아들아!
지난 번에는 죄와 용서에 대해서 나누었는데 오늘은 죄의 정체가 무엇인지? 죄는 왜 생기는 것인지에 대해 나누어 보자.
죄는 ‘자기를 이롭게 하는 것’ ‘자기 중심적인 것’이라고 했잖아? 반면에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했고 그 이름도 여호와[나는 늘 너와 함께 함], 예수[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고 했고 성령님도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하시는 또 다른 보혜사’라고 한 것을 보면 삼위일체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의 성격, 행동방식, 지향하는 목표 등이 순전히 ‘상대방’을 향해 돕고, 유익이 되게 하고,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그런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단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창조하시기 전부터 그 존재 자체가 창조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존재로 계셨고, 창조를 하신 후에도 피조물을 위한 무엇을 다 하시는 존재인 거야. 존재 자체가 그런 분이야.
반면에 ‘죄’라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와는 완전히 다르게 ‘자기 중심적’이라는 성질과 경향성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좋으신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독립할려는 그런 ‘하나님과 반대되는’ 존재적 상태를 가지고 있는 거야. 좀 어려운가? 아뭏든 이해는 가지? 그러니까 ‘죄’라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기 전에는 없던 개념이고 실제는 없는 존재이지. 이 죄라는 놈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후에 ‘피조물’들에게서 생기는 거란다. 왜냐하면 창조되어진 피조물은 어쨌든 하나님과는 별개의 ‘독립된 존재’가 현실적으로 되는 거 아니니? 그러니 당연히 하나님과의 ‘관계’가 생기는 거고. 관계가 생기니까 창조주와 피조물간의 어떤 관계적 위치가 생긴 거야.
죄라는 것은 이 창조주와 피조물간의 관계적 위치에서 ‘하나가 되느냐?’ 아니면 ‘독립하여 둘이 되느냐?’의 선택적 관계가 생기는 거고. 그런 관계 속에서 하나님은 사람 앞에 ‘선악과 나무’를 두신 거야.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선악과 나무에서 나오는 열매를 먹지 말라고 사람에게 하셨는데, 사람이 그 열매를 안 먹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하나로 일치되는 것이고, 먹으면 둘이 되어 서로 독립적인 존재로 따로 살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되는 거 잖아? 그게 하나님 없는 죽음이란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창2:9]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7]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야 하나님과 하나되고 하나님 안에서 공급하시는 풍요와 기쁨을 누리게 되는데, 불순종하면 하나님과 둘이 되고 독립적인 존재가 되니 주[主]가 둘이 되는 거 잖아? 그러니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 질 수 없고 하나님과는 다른 또 다른 나라가 생길 수 밖에 없는 거야.
선악과 나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야. 이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이 실과를 먹으면 죽으니까 먹지 말라고 한 것이지만, 죽는 이유가 ‘먹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하나님의 행복의 울타리를 스스로 벗어나는 게 되어 죽게 되는 거 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그런 의문을 갖잖아? “하나님은 왜? 선악과 나무를 심어 놓고 먹지 말라고 했나?” 그러나 이런 질문은 하나님을 잘 몰라서 그런거야. 좀 전에도 말했지만,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의 관계는 어떤 필연적[반드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인 관계인 거야.
사랑안에서 행복하신 하나님이 자신이 창조하신 사람도 같은 행복을 영원히 누리고 싶어서 자신의 형상을 따라 지었기 때문인 거지. 자유안에서 누리는 행복, 서로를 책임지는 행복, 이것이 바로 사랑안에서의 행복이란다.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 상대방을 위해서 자기가 죽을 수 있는 마음! 어떻게 해서라도 상대방이 잘 되고 행복한 것을 목표로 사는 마음!
그러다 보니 하나님을 떠나 죄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인간을 창조하신 거지. 물론 사랑의 하나님은 그 이후의 대책도 다 마련해 놓으신 거고.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런 장치가 필요했던 거고…… 그게 바로 ‘선악과 나무’란다.
선악과를 먹기 전에는 하나님안에 있는 ‘선’만을 알고 있었지만, 먹고 불순종을 한 후에는 ‘사망'[하나님을 떠난 상태의 현실]을 경험하잖아! 악의 세계를 경험하고 악의 현실속으로 떨어진 거지. 그래서 그것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는 거고 ‘타락’이라고 하는 거야. 하나님과의 올바른 위치에 있던 인간이 죄를 짓고 그 자리에서 떨어진 거지.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어 졌지만, 이제는 마귀의 형상을 닮은 죄의 종이 된 거란다. 빛의 세계에서 어두움의 세계로, 하나님의 사랑에서 사단의 권세아래로 떨어진 거란다.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행26:18]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2:3]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실 때에 구조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단다. 생각하고, 느끼고, 결정할 수 있는 통치자[왕]로서의 인간을 만드신 거야.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6-28]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 맞은 편에 세워 두시고 하나님이 말을 거시고 응답할 수 있는 존재가 되게 하신 거야. 로봇처럼 만드신 게 아니고 자유와 책임을 주셔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대리자’로 세워 주신 거야.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잘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야 되는 거야. 그러나 창조되어진 순간에 이미 독립적인 존재가 되어졌기 때문에 그 경계선 즉, 순종하든지, 불순종하든지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어 있는 거야.
하나님은 가인이 자기 동생 아벨을 죽인 후에 가인에게 나타나셔서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창4:6-7]
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 보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다’고 하셨단다. 그런데 ‘문’이라는 게 나오는데 이 ‘문’이 무어니? 요한 계시록에 보면 예수님이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서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고 하신 말씀이 나오는데, 이 걸 보면 이 문은 사람의 마음 구조속에 있는 어떤 ‘문’이라는 걸 알겠지? 그런데 죄가 그 ‘문’에 엎드려 있다는 거야. 그럼, ‘죄’는 어디서 나온 거니? 마귀가 준 거니?
아까 ‘죄’라는 게 ‘자기 중심적인 어떤 실제’,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할려고 하는 어떤 성질’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언제 생기는 거냐 하면 사람이 창조될 때, 독립적인 육체로 한 인격체가 될 때 생기는 거란다. 네가 원래는 아빠 속에 있었던 생명이었잖아? 아빠 속에 있을 때에는 아빠와 하나가 되어 움직였는데, 네가 태어난 후에는 새로운 독립적인 육체로 둘이 되는 거잖아? 그러니 필연적으로, 두 인격이 되는 거야. 그러니 이제는 너와 아빠 사이에 ‘관계’가 생기고, 순종, 불순종이라는 것이 생기잖아!
그런데, 네 안에 있는 게 하나 있다는 거야. 그게 바로 네 생각, 혹은 다른 사람에게 들은 어떤 정보로 인하여 아빠의 말에 동의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행동할려고 하는 생각, 그것이 바로 ‘죄’라는 거야. 불순종하면 어떠니? 아빠와의 관계가 안좋은 관계가 되고 아빠나 너도 불편하고 행복하지 않은 삶이 되잖아!
그러니까 ‘죄’라는 것은 창조되어진 모든 인간들의 육체,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마음가운데 하나님과 분리될려고 하고 독립적으로 살려고 하는 그런 것이라는 거지. 그 ‘죄’가 언제 드러나겠니? 하나님이 무엇인가 하라든지, 하지 말라든지 하는 어떤 규정[선악과를 먹지 말라]이 주어졌을 때 비로소 그 ‘죄의 실체’가 드러나는 거란다.
그런 ‘죄’의 생각이 내 육체속에서 생겨 날때에 어떻게 하라고 하셨니? 그래,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고 하셨잖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할려고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거야. 그러나 그 생각을 다스려 죽여야 되는 거야. 아담과 가인은 그것을 못하여 사단의 종이 된 거고, 예수님은 그 죄를 다스려 ‘만왕의 왕’이 되신 거지.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마4:4]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줄 아노라….[요12:50]
예수님은 아버지의 말씀이 영생인줄 아시고 그분의 말씀만을 순종하신 거야. 예수님도 육체를 가지고 오셔서 우리와 같은 입장에 있었던 거란다. 예수님은 죄를 이기시고 다스리신 거야. 예수님은 죄에 지고, 죄의 종노릇하는 우리를 위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어 죄값을 다 치루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 거야.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누리게 된 거란다. 그러니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이란다.
에덴 동산에 있었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생명나무가 있었잖아? 그 생명나무는 천국에 있는 거야. 예수님을 믿고 죄사함받아 성령을 선물로 받은 아들들이 천국에 있는 그 생명나무에 나아갈 수 있게 된 거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3:24]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계22:1-2]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계22:14]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되어진 사람 앞에 놓여 있던 선악과 나무와 생명나무는 성경 맨처음인 창세기와 맨마지막인 요한 계시록에 나온 것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를 시작하여 완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천국생활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임을 알 수 있는 거란다.
이 내용은 아빠가 볼 때 성경에서 나오는 많은 의문점들을 푸는데 굉장히 중요한 내용이라고 본단다. 그만큼 쉽지 않은 내용이기도 하고. 그러나 내용을 이해하고 보면 성경의 희미한 내용들이 잘 풀리지 않는 게 있는데 이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풀리고 우리의 신앙생활도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 들거야.
아들아!
무슨 문제가 잘 이해안되고 안 풀릴때에는 ‘꾸짖지 아니하시고 자비롭고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께 구하거라. 그리고 좋은 것[성령님을 통해]을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거라. 그러면 반드시 주신단다. 말씀을 근거로 기도하고 말씀만을 따라 가거라. 그러면 생명나무에 나어가며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을 거란다.
축복한다.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