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작하는 말
텔레비전에 서너 명의 청년들이 웃고 떠들면서 지나가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그들과 함께 가던 한 초등학생의 귀여운 얼굴이 보였는데, 같이 반말을 하며 웃고 떠들었습니다. ‘초등학생이 형의 친구들한테 반말을 하며 까불면 되나!’ 하다가 그만 심히 안타까운 마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도 동갑네 친구이었는데, 성장이 되지 않아서 겪는 불편과 아픔에 대해 방영하는 것이었습니다.
외적 성장을 못하는 것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내적 성장을 못하는 것입니다. 내적 성장을 못하는 것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영적 성장을 못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5:12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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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2. 영적 성장을 도모하라
바울 사도는 골로새 교인들이 더욱 성장하도록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중보기도의 첫째 내용은, 교인들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라는 것입니다.
“신령한 지혜와 총명”의 “신령한”의 헬라어 프뉴마티케(πνευματικῇ)는 ‘성령이 주시는’을 뜻합니다. 이 “지혜와 총명”은 이성에서 비롯되는 것도 아니고, 율법에서 비롯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종교들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고, 주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주시는 것입니다.
“총명”의 헬라어 쉬네세이(συνέσει)는 “옳고 그른 것을 결정하는 능력, 또는 이해력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를 함축하는 “지혜”의 헬라어 소피아(σοφίᾳ)는 매일의 생활 속에서 보다 더 나은 결단과 행위, 보다 더 값진 결단과 행위, 보다 더 중요한 결단과 행위, 보다 더 우선적인 것에 대한 결단과 행위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혜로운 결단과 행위를 위해서 먼저 ‘보다 더 ~한 것’을 분별할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보다 더~한 것’에 대한 분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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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다는 것입니다.
돈을 최고로 여기는 사람과 의리를 최고로 여기는 사람과 죄악의 낙을 최고로 여기는 사람의 ‘보다 더’에 대한 판단은 제각각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유익보다 더 당리당략을 우선시하는 의원들과 당보다 더 국민의 유익을 우선시하는 의원들의 판단은 상반될 수밖에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20을 보면,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라고 했습니다.
참 지혜인 영적 지혜인 올바른 분별과 판단에 입각한 결단과 행위란 오직 하나님 섬김에서만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잠언 9:10을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시편 111:10에는,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좋은 지각이 있나니 여호와를 찬송함이 영원히 있으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만물의 창조주시며 섭리자이시며 판단자이신 하나님을 삼가 두려운 마음으로 믿고 섬기고, 그 말씀을 따름으로써 신령한 지혜와 총명을 얻는 것입니다.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워 나가야 합니다. 우리 인생살이에 대한 하나님의 뜻, 우리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뜻, 우리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뜻, 우리 나라와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뜻, 온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워 나갈 때에 신령한 지혜와 총명이 심화되며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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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보다 더 잘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적인 것보다는 하늘나라를, 육적인 것보다는 영적인 것을, 일시적인 것보다는 영원한 것을, 그리고 나보다는 하나님을 위한 결단과 행위를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 예수님이 보여 주신 행위이며 삶이었습니다. 또한, 주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란 온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이요 만물을 통일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성부 하나님의 섭리를 따른 복종이었습니다. 그런 주 예수님에 대해 골로새서 2:3에,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주 예수님이 당신의 생애와 죽음에서 분명하게 보여준 바와 같은 지혜는 우리의 매일의 삶 속에서도 나타나야 합니다. 내 생각, 내 뜻, 내 감정을 부인하고, 지혜와 총명의 삶을 위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5을 보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우리의 뜻을 하나님께 알리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라는 선물을 주신 목적은 우리의 사정을 들으시기보다는 우리에게 당신의 음성을 들려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교인들을 위해 기도하는 둘째 내용은,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주께 합당히 행한다는 것은 주 예수님이 보여 주신 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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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사랑과 의와 진리와 자유와 성결을 본받는 생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주께 합당하게 사는 궁극적인 목적은 범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언행이야말로 자기를 기쁘게 하고, 남들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자신과 가족과 남들 모두를 기쁘게 하는 것이 상을 타는 것이고, 학생은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아닙니까?
어느 목사님이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과 환장할 소식을 소개했습니다. 좋은 소식: 아이가 상을 타 왔네. 나쁜 소식: 옆집 애도 타 왔네. 환장할 소식: 아이들 기 살린다고 전교생 다 주었다네.
어느 대학 수학과에는 학생들이 숙제하는 데 참고하라고 옛날 리포트를 많이 모아 두었습니다. 이런 걸 악용하는 사람은 어디나 있습니다. 한 학생이 선배들의 리포트 가운데 A+ 받은 걸 그대로 베껴서 냈는데, 예상대로 A+를 받고 의기양양해 하며 교수의 촌평을 보았습니다. 뭐라고 칭찬하셨을까 잔뜩 기대하며 읽고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 리포트 내가 학부 때 냈다가 A+ 받은 건데, 지금 내가 봐도 A+ 줄 만하다.”
바울 사도는 회심 후의 자신의 생활에 대해 갈라디아서 1:10에,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좋게 하고 기쁘시게 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의미에서 사람을 좋게 하고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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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는 지속적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으려면 우리의 지정의가 주 예수님과 연합되어 발휘되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5:5을 보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성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자라면 자랄수록 그만큼 더 신앙인격이 자라고, 믿음이 자라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교인들을 위해 기도하는 셋째 내용은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온갖 종류의 시험과 고난 그리고 사람 등에 대해 주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영적 기쁨으로 참고 견디고 이겨 낼 신적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바울 사도가 교인들을 위해 기도하는 넷째 내용은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영원불변하신 사랑과 진리와 의와 자유의 빛으로 오신 주 예수님 안에서 얻은 은혜와 복 그리고 영원한 천국 백성으로 합당하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은 빛의 자녀입니다. 빛을 등지고 사는 사람은 그림자를 바라보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빛을 향해 사는 사람은 그림자를 등지고 살게 됩니다. 우리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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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영적으로 연합한 성도는 빛 가운데에 사는 것입니다. 빛 가운데서 사랑과 의와 진리와 자유의 열매 등을 맺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3. 맺음말
우리는 영생의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고, 영적으로 새사람이 되는 중생의 체험을 했습니다. 이후로 계속 성장해야 합니다. 성령이 주시는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과 그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워야 하고, 주님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이 열매를 위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힘을 좇아 능력을 갖추며 기쁨으로 인내하고, 빛 가운데서 현세와 내세의 기업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필자의 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주석(마-계 8610쪽)/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3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HP 010-6889-3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