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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론의 문제/ 이스라엘이 다 선민인가?(롬 9: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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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통한 어조로 영적 및 역사적 특권을 가진 동족 이스라엘의 불신을 논한 바울은, 만일 이스라엘인들 중에 구원받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고 하면 이스라엘의 구원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폐기된 것이 아닌가 하는 당연한 의문에 대해, 【6】[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라고 답변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ὁ λόγος τού θεού)은 선언된 하나님의 일관된 목적 또는 계획이라는 의미에서 쓰여진 것으로, 구약성경의 언약과 약속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폐하여]는 에크페프토켄(ἐκπέπττωκεν)으로서 ‘항로에서 벗어나다’, ‘효력이 없어지다’, ‘폐기하다’, ‘소멸하다’, ‘실패하다’(행 27:17, 고전 13:8, 갈 5:4), ‘~로부터 떨어지다’(행 12:7, 약 1:11) 등을 뜻한다.
언약과 약속들을 통해 나타내신 하나님의 계획 또는 목적이 폐기된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민족의 대부분이 버림받는 자와 같은 상태에 있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 점에 대해, 바울은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라고 설명하고 있다(원문에는 초두에 가르, γὰρ가 있다). 즉, 이스라엘게서 출생한 자 곧 이스라엘 민족이라고 해서 다 참 이스라엘인 하나님의 백성은 아니라는 것이다. 혈통상의 이스라엘이 그대로 영적 이스라엘(갈 6:16)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바울은 아브라함을 들어 보충 설명을 하고 있다. 즉,【7】[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라고 하였다.
아브라함은 사라에게서 이삭을 낳고(창 21:3), 사라의 몸종인 하갈에게서는 이스마엘을 낳고(창 16:15), 그리고 후처인 그두라에게서는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를 낳아(창 25:1, 2) 많은 자식이 있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특히 신학적인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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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에서는 이스마엘과 이삭이 대조된다(갈 4:21-27).
아브라함의 [씨](스펠마, σπέρμα: 단수이자 복수) 곧 혈통상의 자손이라 해서 모두가 다 [그 자녀] 곧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낳은 참 자녀는 아니다. 이 사실은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라는 말로 설명된다. 이것은 창세기 21:12에서 인용한 것인데, 히브리서 11:18에도 인용되어 있다.
이스마엘은,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창 15:4)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믿지 못한 사라의 부탁을 받은 아브라함과 여종인 하갈의 단순한 육체 관계에 의해 출생하였다(창 16:2). 반면에, 이삭은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창 15:4)라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대로 아브라함과 자유하는 여자인 사라 사이에서 출생하였다(롬 4:19-22, 갈 4:23, 23). 엄밀히 말하면, 임신이 불가능한 육체적 조건을 미루어 보아 이는 약속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출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약속의 자녀인 이삭의 후손을 가리켜, [네 씨]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일컬으신 것이다(참조: 갈 3:29).①
그러한 의미에서 바울은【8】[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라고 하는 것이다.
[육신의 자녀]는 앞에서 말한바 아브라함과 여종인 하갈의 단순한 육체 관계에 의해 출생한 이스마엘과 그 후손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니다.
[약속의 자녀]는 앞에서 말한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서 출생한(실상은 약속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출생) 이삭과 그 후손들이다. 이들만이 하나님의 자녀들로 ‘[여기심을 받]는 것이다’(로기제타이, λογίζεται: 4:3의 주석을 보라).
혈통상으로는 같은 이스라엘 민족이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자녀인 영적 이스라엘 곧 참 이스라엘로 구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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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저자의 이름만 밝혔고, 같은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네 명 이하일 경우에는 본문의 괄호 속에 이름만 밝혔음.
1) 저자의 갈라디아서 3:29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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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구별의 요인에 대해서, 바울은 【9】[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라]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구절은 창세기 18:10, 14(LXX)을 자유롭게 인용한 것이다(비교: 창 17:21). 대체로 바울의 구약성경 인용은 문자적인 것과 자유로운 것 그리고 암시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 약속으로 말미암아 이삭은 아브라함의 참 자손 곧 하나님의 자손으로 인정된 것이다. “이 말씀에는 성취를 통해 하나님의 예정과 약속은 절대로 어김없다는 하나님의 보증이 있다”(泉田 昭).
이삭과 이스마엘을 들어 하나님의 자녀인 영적 이스라엘과 그렇지 않은 육적 이스라엘을 구별한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리브가의 쌍둥이인 에서와 야곱의 예를 들어 하나님의 약속과 그 소명이 얼마나 중대한가를 논하고 있다. 그는 【10】[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라고 서두를 뗀다.
앞서 말한 이삭과 이스마엘은 아브라함과 두 여인 사이에서 출생한 아들들임에 비하여, 에서와 야곱은 이삭과 한 여인인 리브가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따라서, 이삭과 이스마엘의 경우에는 어머니가 서로 다르므로 구별이 있어도 어쩔 수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에서와 야곱의 경우에는 구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구별이 있었다.
그 구별에 대해서, 【11】[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로 표현되어 있다.
에서와 야곱의 구별은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즉 그들의 기질과 성격 등이 형성되지 않았을 때나, 선 또는 악을 행하지도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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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때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칼빈(J. Calvin)은 “경건한 자의 구원에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보다 더 높은 원인을 찾지 못하며, 사악한 자의 멸망에 있어서 우리는 그의 엄격한 정의보다 더 높은 원인을 찾지 못한다. 그러므로 (1) 언약의 축복은 이스라엘 백성을 모든 다른 백성들과 분리시킨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선택은 그 민족 중에서도 구별하여 어떤 이들은 구원으로, 다른 이들은 영원한 저주로 예정하신다. (2) 이 선택의 유일한 근거는 하나님의 선이며, 또한 아담의 타락 이래 어떠한 행위든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들을 포용하시는 자비이다. (3) 하나님의 뜻밖의 선택에 있어서 주는 자유로우시며,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똑같은 은혜를 베푸셔야 할 필연성에서 면제되어 있으시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나님의 선택에 있어서의 절대 자유와 그 근거로서의 하나님의 선 또는 자비라는 말은 타당하지만, 어떤 이들은 구원으로, 다른 이들은 영원한 저주인 멸망으로 예정하셨다는 말은 옳지 못하다. 출생하기도 전에 구원으로 예정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비요 은혜이지만, 출생하기도 전에 영원한 저주로 예정된 자들에게는 결코 자비가 아니라 횡포요 더할 나위 없는 폭거이다. 또한, 성경이 증거하는바 우주적 구원 사건인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아무런 의미가 없거나, 아니면 구원으로 예정된 자들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으로 축소되고 만다. 즉, 제한적 구속론이 되고 마는 것이다.
바울의 취지는 다음과 같다. 하나님의 사랑에 의거한 선택 또는 예정이란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게 하신 것이다(요 3:16, 엡 1:4-5)②. 이 은혜로운 예정은 인간이 출생하기도 전에, 그리고 출생 후의 행위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친히 그리스도 안에서 결정하신 것이다. 바울 자신은 “곧 창세 전에 그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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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저자의 에베소서 1:4-5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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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라고 하였고, 또한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③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예정은 역사적 부르심으로 구체화되고, 이 역사적 부르심은 인간의 선행이 아니라 믿음의 결단을 요청하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라고 한 것이다.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ἡ κατ’ ἐκλογὴν πρόθεσις τού θεού)는 “선택의 원리에 작용된 하나님의 목적”(W. Sanday & A. C. Headlam), 즉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의지를 의미하는 것이다.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는 인간의 어떠한 행위로 비롯되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신다는 뜻이다. 이 점에 대해, 바울은【12】[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라고 하였다. 이 구절은 창세기 25:23(LXX)을 인용하여 설명한 것이다.
이 말씀은 장남인 에서와 차남인 야곱이 리브가의 태중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리브가에게 주신 말씀이다. 즉, 개인 또는 민족의 운명이 하나님에 의해 미리 자유롭게 선택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에서와 그 후손을 출생하기도 전에 멸망으로, 그리고 야곱과 그 후손은 구원으로 선택하셨음을 의미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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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저자의 에베소서 2:8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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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바울은 【13】[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라고 하였다.
본래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했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말 1:2-3).
이 말씀 역시 선택에 있어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강조한 것이다. 바르트(K. Barth)는 “하나님의 행동과 행위의 특성에 관한 묘사이다. 그는 자유로우시고 제왕다우며, 주권자이시고, 무제약자이시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다는 점에서만 하나님을 이해하고, 하나님께 영예를 돌릴 수 있다.”라고 하였다.
이 구절에 대해 출생 전의 하나님의 선택에 관한 내용이라고 하는 학자들④이 있지만, 창세기 25:23과 전후 문맥에 나타난 바울의 취지를 보아 많은 학자들⑤의 견해인 ‘두 민족의 운명을 예언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앞 구절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출생하기도 전에 구원받을 자로, 어떤 사람은 멸망할 자로 선택하셨다고 주장할 만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에서를 미워하였다]고 했지만, 그 동사(에미세사, ἐμίσησα)는 ‘덜 사랑하였다’(창 29:33, 마 6:24, 눅 14:26, 요 12:25. A. Barnes, “Hodge”⑥), ‘미워하였다’, ‘증오하였다’(W. Sanday & A. C. Headlam)라는 뜻이지 영원한 멸망을 뜻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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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J. Calvin, “Weiss, Lipsius, Fritzsche”(in W. Sanday & A. C. Headlam).
5) “Godet, Gifford, Liddon”(in W. Sanday & A. C. Headlam), A. Clarke, J. Wesley, E. Best, J. Barmby, W. Sanday & A. C. Headlam, W. M. Greathouse, A. Barnes.
6) in 김선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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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은 아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 즉 구원 또는 사랑의 말씀(그리스도)을 믿고 순종하는 자를 축복 또는 구원하고자 하시는 일에 반하여 행한 에서와 그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야곱을 사랑하]였다고 했지만, 실제로 그 야곱의 후손들 중에서도 하나님의 미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반면에, 에서의 후손들 중에도 구원받은 자들이 있다. 그렇다면,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바울의 취지는 구원이란 인간 및 인간의 행위와 전혀 상관없는 것이며, 하나님의 자유롭고도 은혜로운 절대 주권에 의한 영원한 선택의 의지와 그에 따른 약속에 의한 것임을 주지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그 예정에 따른 역사적 부르심은 항상 인간의 믿음의 결단을 요청하는 것이다(3:21-5:21, 요 3:16. 참조: 마 22:1-14, 눅 14:15-24).
바울의 그러한 취지는 모든 인류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은 혈통이나 어떠한 종교 의식이나 도덕적 행위가 아니라,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뜻(11절)과 약속(8절)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의 뜻과 약속의 결정적 성취인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나야만 하는 것이다. 현재 새 이스라엘인 교회의 일원이라고 해서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스런 후사라고 자만해서는 안 된다. 어드만(C. R. Erdman)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산 신앙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씨가 될 수 있으며 약속의 후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출처: 최세창, 로마서(서울: 글벗사, 2000년 2판 1쇄), pp. 356-362.

필자의 www.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주석(마-계 8610쪽)/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3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HP 010-6889-3051

예정론의 문제/ 이스라엘이 다 선민인가?(롬 9: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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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통한 어조로 영적 및 역사적 특권을 가진 동족 이스라엘의 불신을 논한 바울은, 만일 이스라엘인들 중에 구원받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고 하면 이스라엘의 구원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폐기된 것이 아닌가 하는 당연한 의문에 대해, 【6】[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라고 답변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ὁ λόγος τού θεού)은 선언된 하나님의 일관된 목적 또는 계획이라는 의미에서 쓰여진 것으로, 구약성경의 언약과 약속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폐하여]는 에크페프토켄(ἐκπέπττωκεν)으로서 ‘항로에서 벗어나다’, ‘효력이 없어지다’, ‘폐기하다’, ‘소멸하다’, ‘실패하다’(행 27:17, 고전 13:8, 갈 5:4), ‘~로부터 떨어지다’(행 12:7, 약 1:11) 등을 뜻한다.
언약과 약속들을 통해 나타내신 하나님의 계획 또는 목적이 폐기된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민족의 대부분이 버림받는 자와 같은 상태에 있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 점에 대해, 바울은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라고 설명하고 있다(원문에는 초두에 가르, γὰρ가 있다). 즉, 이스라엘게서 출생한 자 곧 이스라엘 민족이라고 해서 다 참 이스라엘인 하나님의 백성은 아니라는 것이다. 혈통상의 이스라엘이 그대로 영적 이스라엘(갈 6:16)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바울은 아브라함을 들어 보충 설명을 하고 있다. 즉,【7】[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라고 하였다.
아브라함은 사라에게서 이삭을 낳고(창 21:3), 사라의 몸종인 하갈에게서는 이스마엘을 낳고(창 16:15), 그리고 후처인 그두라에게서는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를 낳아(창 25:1, 2) 많은 자식이 있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특히 신학적인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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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에서는 이스마엘과 이삭이 대조된다(갈 4:21-27).
아브라함의 [씨](스펠마, σπέρμα: 단수이자 복수) 곧 혈통상의 자손이라 해서 모두가 다 [그 자녀] 곧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낳은 참 자녀는 아니다. 이 사실은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라는 말로 설명된다. 이것은 창세기 21:12에서 인용한 것인데, 히브리서 11:18에도 인용되어 있다.
이스마엘은,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창 15:4)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믿지 못한 사라의 부탁을 받은 아브라함과 여종인 하갈의 단순한 육체 관계에 의해 출생하였다(창 16:2). 반면에, 이삭은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창 15:4)라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대로 아브라함과 자유하는 여자인 사라 사이에서 출생하였다(롬 4:19-22, 갈 4:23, 23). 엄밀히 말하면, 임신이 불가능한 육체적 조건을 미루어 보아 이는 약속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출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약속의 자녀인 이삭의 후손을 가리켜, [네 씨]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일컬으신 것이다(참조: 갈 3:29).①
그러한 의미에서 바울은【8】[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라고 하는 것이다.
[육신의 자녀]는 앞에서 말한바 아브라함과 여종인 하갈의 단순한 육체 관계에 의해 출생한 이스마엘과 그 후손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니다.
[약속의 자녀]는 앞에서 말한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서 출생한(실상은 약속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출생) 이삭과 그 후손들이다. 이들만이 하나님의 자녀들로 ‘[여기심을 받]는 것이다’(로기제타이, λογίζεται: 4:3의 주석을 보라).
혈통상으로는 같은 이스라엘 민족이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자녀인 영적 이스라엘 곧 참 이스라엘로 구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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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저자의 이름만 밝혔고, 같은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네 명 이하일 경우에는 본문의 괄호 속에 이름만 밝혔음.
1) 저자의 갈라디아서 3:29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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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구별의 요인에 대해서, 바울은 【9】[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라]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구절은 창세기 18:10, 14(LXX)을 자유롭게 인용한 것이다(비교: 창 17:21). 대체로 바울의 구약성경 인용은 문자적인 것과 자유로운 것 그리고 암시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 약속으로 말미암아 이삭은 아브라함의 참 자손 곧 하나님의 자손으로 인정된 것이다. “이 말씀에는 성취를 통해 하나님의 예정과 약속은 절대로 어김없다는 하나님의 보증이 있다”(泉田 昭).
이삭과 이스마엘을 들어 하나님의 자녀인 영적 이스라엘과 그렇지 않은 육적 이스라엘을 구별한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리브가의 쌍둥이인 에서와 야곱의 예를 들어 하나님의 약속과 그 소명이 얼마나 중대한가를 논하고 있다. 그는 【10】[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라고 서두를 뗀다.
앞서 말한 이삭과 이스마엘은 아브라함과 두 여인 사이에서 출생한 아들들임에 비하여, 에서와 야곱은 이삭과 한 여인인 리브가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따라서, 이삭과 이스마엘의 경우에는 어머니가 서로 다르므로 구별이 있어도 어쩔 수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에서와 야곱의 경우에는 구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구별이 있었다.
그 구별에 대해서, 【11】[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로 표현되어 있다.
에서와 야곱의 구별은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즉 그들의 기질과 성격 등이 형성되지 않았을 때나, 선 또는 악을 행하지도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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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때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칼빈(J. Calvin)은 “경건한 자의 구원에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보다 더 높은 원인을 찾지 못하며, 사악한 자의 멸망에 있어서 우리는 그의 엄격한 정의보다 더 높은 원인을 찾지 못한다. 그러므로 (1) 언약의 축복은 이스라엘 백성을 모든 다른 백성들과 분리시킨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선택은 그 민족 중에서도 구별하여 어떤 이들은 구원으로, 다른 이들은 영원한 저주로 예정하신다. (2) 이 선택의 유일한 근거는 하나님의 선이며, 또한 아담의 타락 이래 어떠한 행위든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들을 포용하시는 자비이다. (3) 하나님의 뜻밖의 선택에 있어서 주는 자유로우시며,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똑같은 은혜를 베푸셔야 할 필연성에서 면제되어 있으시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나님의 선택에 있어서의 절대 자유와 그 근거로서의 하나님의 선 또는 자비라는 말은 타당하지만, 어떤 이들은 구원으로, 다른 이들은 영원한 저주인 멸망으로 예정하셨다는 말은 옳지 못하다. 출생하기도 전에 구원으로 예정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비요 은혜이지만, 출생하기도 전에 영원한 저주로 예정된 자들에게는 결코 자비가 아니라 횡포요 더할 나위 없는 폭거이다. 또한, 성경이 증거하는바 우주적 구원 사건인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아무런 의미가 없거나, 아니면 구원으로 예정된 자들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으로 축소되고 만다. 즉, 제한적 구속론이 되고 마는 것이다.
바울의 취지는 다음과 같다. 하나님의 사랑에 의거한 선택 또는 예정이란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게 하신 것이다(요 3:16, 엡 1:4-5)②. 이 은혜로운 예정은 인간이 출생하기도 전에, 그리고 출생 후의 행위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친히 그리스도 안에서 결정하신 것이다. 바울 자신은 “곧 창세 전에 그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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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저자의 에베소서 1:4-5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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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라고 하였고, 또한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③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예정은 역사적 부르심으로 구체화되고, 이 역사적 부르심은 인간의 선행이 아니라 믿음의 결단을 요청하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라고 한 것이다.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ἡ κατ’ ἐκλογὴν πρόθεσις τού θεού)는 “선택의 원리에 작용된 하나님의 목적”(W. Sanday & A. C. Headlam), 즉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의지를 의미하는 것이다.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는 인간의 어떠한 행위로 비롯되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신다는 뜻이다. 이 점에 대해, 바울은【12】[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라고 하였다. 이 구절은 창세기 25:23(LXX)을 인용하여 설명한 것이다.
이 말씀은 장남인 에서와 차남인 야곱이 리브가의 태중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리브가에게 주신 말씀이다. 즉, 개인 또는 민족의 운명이 하나님에 의해 미리 자유롭게 선택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에서와 그 후손을 출생하기도 전에 멸망으로, 그리고 야곱과 그 후손은 구원으로 선택하셨음을 의미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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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저자의 에베소서 2:8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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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바울은 【13】[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라고 하였다.
본래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했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말 1:2-3).
이 말씀 역시 선택에 있어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강조한 것이다. 바르트(K. Barth)는 “하나님의 행동과 행위의 특성에 관한 묘사이다. 그는 자유로우시고 제왕다우며, 주권자이시고, 무제약자이시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다는 점에서만 하나님을 이해하고, 하나님께 영예를 돌릴 수 있다.”라고 하였다.
이 구절에 대해 출생 전의 하나님의 선택에 관한 내용이라고 하는 학자들④이 있지만, 창세기 25:23과 전후 문맥에 나타난 바울의 취지를 보아 많은 학자들⑤의 견해인 ‘두 민족의 운명을 예언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앞 구절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출생하기도 전에 구원받을 자로, 어떤 사람은 멸망할 자로 선택하셨다고 주장할 만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에서를 미워하였다]고 했지만, 그 동사(에미세사, ἐμίσησα)는 ‘덜 사랑하였다’(창 29:33, 마 6:24, 눅 14:26, 요 12:25. A. Barnes, “Hodge”⑥), ‘미워하였다’, ‘증오하였다’(W. Sanday & A. C. Headlam)라는 뜻이지 영원한 멸망을 뜻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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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J. Calvin, “Weiss, Lipsius, Fritzsche”(in W. Sanday & A. C. Headlam).
5) “Godet, Gifford, Liddon”(in W. Sanday & A. C. Headlam), A. Clarke, J. Wesley, E. Best, J. Barmby, W. Sanday & A. C. Headlam, W. M. Greathouse, A. Barnes.
6) in 김선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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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은 아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 즉 구원 또는 사랑의 말씀(그리스도)을 믿고 순종하는 자를 축복 또는 구원하고자 하시는 일에 반하여 행한 에서와 그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야곱을 사랑하]였다고 했지만, 실제로 그 야곱의 후손들 중에서도 하나님의 미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반면에, 에서의 후손들 중에도 구원받은 자들이 있다. 그렇다면,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바울의 취지는 구원이란 인간 및 인간의 행위와 전혀 상관없는 것이며, 하나님의 자유롭고도 은혜로운 절대 주권에 의한 영원한 선택의 의지와 그에 따른 약속에 의한 것임을 주지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그 예정에 따른 역사적 부르심은 항상 인간의 믿음의 결단을 요청하는 것이다(3:21-5:21, 요 3:16. 참조: 마 22:1-14, 눅 14:15-24).
바울의 그러한 취지는 모든 인류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은 혈통이나 어떠한 종교 의식이나 도덕적 행위가 아니라,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뜻(11절)과 약속(8절)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의 뜻과 약속의 결정적 성취인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나야만 하는 것이다. 현재 새 이스라엘인 교회의 일원이라고 해서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스런 후사라고 자만해서는 안 된다. 어드만(C. R. Erdman)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산 신앙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씨가 될 수 있으며 약속의 후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출처: 최세창, 로마서(서울: 글벗사, 2000년 2판 1쇄), pp. 356-362.

필자의 www.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주석(마-계 8610쪽)/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3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HP 010-6889-3051

예정론의 문제/ 이스라엘이 다 선민인가?(롬 9: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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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통한 어조로 영적 및 역사적 특권을 가진 동족 이스라엘의 불신을 논한 바울은, 만일 이스라엘인들 중에 구원받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고 하면 이스라엘의 구원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폐기된 것이 아닌가 하는 당연한 의문에 대해, 【6】[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라고 답변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ὁ λόγος τού θεού)은 선언된 하나님의 일관된 목적 또는 계획이라는 의미에서 쓰여진 것으로, 구약성경의 언약과 약속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폐하여]는 에크페프토켄(ἐκπέπττωκεν)으로서 ‘항로에서 벗어나다’, ‘효력이 없어지다’, ‘폐기하다’, ‘소멸하다’, ‘실패하다’(행 27:17, 고전 13:8, 갈 5:4), ‘~로부터 떨어지다’(행 12:7, 약 1:11) 등을 뜻한다.
언약과 약속들을 통해 나타내신 하나님의 계획 또는 목적이 폐기된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민족의 대부분이 버림받는 자와 같은 상태에 있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 점에 대해, 바울은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라고 설명하고 있다(원문에는 초두에 가르, γὰρ가 있다). 즉, 이스라엘게서 출생한 자 곧 이스라엘 민족이라고 해서 다 참 이스라엘인 하나님의 백성은 아니라는 것이다. 혈통상의 이스라엘이 그대로 영적 이스라엘(갈 6:16)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바울은 아브라함을 들어 보충 설명을 하고 있다. 즉,【7】[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라고 하였다.
아브라함은 사라에게서 이삭을 낳고(창 21:3), 사라의 몸종인 하갈에게서는 이스마엘을 낳고(창 16:15), 그리고 후처인 그두라에게서는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를 낳아(창 25:1, 2) 많은 자식이 있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특히 신학적인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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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에서는 이스마엘과 이삭이 대조된다(갈 4:21-27).
아브라함의 [씨](스펠마, σπέρμα: 단수이자 복수) 곧 혈통상의 자손이라 해서 모두가 다 [그 자녀] 곧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낳은 참 자녀는 아니다. 이 사실은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라는 말로 설명된다. 이것은 창세기 21:12에서 인용한 것인데, 히브리서 11:18에도 인용되어 있다.
이스마엘은,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창 15:4)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믿지 못한 사라의 부탁을 받은 아브라함과 여종인 하갈의 단순한 육체 관계에 의해 출생하였다(창 16:2). 반면에, 이삭은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창 15:4)라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대로 아브라함과 자유하는 여자인 사라 사이에서 출생하였다(롬 4:19-22, 갈 4:23, 23). 엄밀히 말하면, 임신이 불가능한 육체적 조건을 미루어 보아 이는 약속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출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약속의 자녀인 이삭의 후손을 가리켜, [네 씨]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일컬으신 것이다(참조: 갈 3:29).①
그러한 의미에서 바울은【8】[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라고 하는 것이다.
[육신의 자녀]는 앞에서 말한바 아브라함과 여종인 하갈의 단순한 육체 관계에 의해 출생한 이스마엘과 그 후손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니다.
[약속의 자녀]는 앞에서 말한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서 출생한(실상은 약속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출생) 이삭과 그 후손들이다. 이들만이 하나님의 자녀들로 ‘[여기심을 받]는 것이다’(로기제타이, λογίζεται: 4:3의 주석을 보라).
혈통상으로는 같은 이스라엘 민족이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자녀인 영적 이스라엘 곧 참 이스라엘로 구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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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자의 갈라디아서 3:29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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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구별의 요인에 대해서, 바울은 【9】[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라]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구절은 창세기 18:10, 14(LXX)을 자유롭게 인용한 것이다(비교: 창 17:21). 대체로 바울의 구약성경 인용은 문자적인 것과 자유로운 것 그리고 암시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 약속으로 말미암아 이삭은 아브라함의 참 자손 곧 하나님의 자손으로 인정된 것이다. “이 말씀에는 성취를 통해 하나님의 예정과 약속은 절대로 어김없다는 하나님의 보증이 있다”(泉田 昭).
이삭과 이스마엘을 들어 하나님의 자녀인 영적 이스라엘과 그렇지 않은 육적 이스라엘을 구별한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리브가의 쌍둥이인 에서와 야곱의 예를 들어 하나님의 약속과 그 소명이 얼마나 중대한가를 논하고 있다. 그는 【10】[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라고 서두를 뗀다.
앞서 말한 이삭과 이스마엘은 아브라함과 두 여인 사이에서 출생한 아들들임에 비하여, 에서와 야곱은 이삭과 한 여인인 리브가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따라서, 이삭과 이스마엘의 경우에는 어머니가 서로 다르므로 구별이 있어도 어쩔 수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에서와 야곱의 경우에는 구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구별이 있었다.
그 구별에 대해서, 【11】[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로 표현되어 있다.
에서와 야곱의 구별은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즉 그들의 기질과 성격 등이 형성되지 않았을 때나, 선 또는 악을 행하지도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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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때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칼빈(J. Calvin)은 “경건한 자의 구원에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보다 더 높은 원인을 찾지 못하며, 사악한 자의 멸망에 있어서 우리는 그의 엄격한 정의보다 더 높은 원인을 찾지 못한다. 그러므로 (1) 언약의 축복은 이스라엘 백성을 모든 다른 백성들과 분리시킨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선택은 그 민족 중에서도 구별하여 어떤 이들은 구원으로, 다른 이들은 영원한 저주로 예정하신다. (2) 이 선택의 유일한 근거는 하나님의 선이며, 또한 아담의 타락 이래 어떠한 행위든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들을 포용하시는 자비이다. (3) 하나님의 뜻밖의 선택에 있어서 주는 자유로우시며,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똑같은 은혜를 베푸셔야 할 필연성에서 면제되어 있으시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나님의 선택에 있어서의 절대 자유와 그 근거로서의 하나님의 선 또는 자비라는 말은 타당하지만, 어떤 이들은 구원으로, 다른 이들은 영원한 저주인 멸망으로 예정하셨다는 말은 옳지 못하다. 출생하기도 전에 구원으로 예정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비요 은혜이지만, 출생하기도 전에 영원한 저주로 예정된 자들에게는 결코 자비가 아니라 횡포요 더할 나위 없는 폭거이다. 또한, 성경이 증거하는바 우주적 구원 사건인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아무런 의미가 없거나, 아니면 구원으로 예정된 자들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으로 축소되고 만다. 즉, 제한적 구속론이 되고 마는 것이다.
바울의 취지는 다음과 같다. 하나님의 사랑에 의거한 선택 또는 예정이란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게 하신 것이다(요 3:16, 엡 1:4-5)②. 이 은혜로운 예정은 인간이 출생하기도 전에, 그리고 출생 후의 행위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친히 그리스도 안에서 결정하신 것이다. 바울 자신은 “곧 창세 전에 그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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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저자의 에베소서 1:4-5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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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라고 하였고, 또한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③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예정은 역사적 부르심으로 구체화되고, 이 역사적 부르심은 인간의 선행이 아니라 믿음의 결단을 요청하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라고 한 것이다.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ἡ κατ’ ἐκλογὴν πρόθεσις τού θεού)는 “선택의 원리에 작용된 하나님의 목적”(W. Sanday & A. C. Headlam), 즉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의지를 의미하는 것이다.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는 인간의 어떠한 행위로 비롯되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신다는 뜻이다. 이 점에 대해, 바울은【12】[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라고 하였다. 이 구절은 창세기 25:23(LXX)을 인용하여 설명한 것이다.
이 말씀은 장남인 에서와 차남인 야곱이 리브가의 태중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리브가에게 주신 말씀이다. 즉, 개인 또는 민족의 운명이 하나님에 의해 미리 자유롭게 선택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에서와 그 후손을 출생하기도 전에 멸망으로, 그리고 야곱과 그 후손은 구원으로 선택하셨음을 의미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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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저자의 에베소서 2:8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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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바울은 【13】[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라고 하였다.
본래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했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말 1:2-3).
이 말씀 역시 선택에 있어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강조한 것이다. 바르트(K. Barth)는 “하나님의 행동과 행위의 특성에 관한 묘사이다. 그는 자유로우시고 제왕다우며, 주권자이시고, 무제약자이시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다는 점에서만 하나님을 이해하고, 하나님께 영예를 돌릴 수 있다.”라고 하였다.
이 구절에 대해 출생 전의 하나님의 선택에 관한 내용이라고 하는 학자들④이 있지만, 창세기 25:23과 전후 문맥에 나타난 바울의 취지를 보아 많은 학자들⑤의 견해인 ‘두 민족의 운명을 예언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앞 구절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출생하기도 전에 구원받을 자로, 어떤 사람은 멸망할 자로 선택하셨다고 주장할 만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에서를 미워하였다]고 했지만, 그 동사(에미세사, ἐμίσησα)는 ‘덜 사랑하였다’(창 29:33, 마 6:24, 눅 14:26, 요 12:25. A. Barnes, “Hodge”⑥), ‘미워하였다’, ‘증오하였다’(W. Sanday & A. C. Headlam)라는 뜻이지 영원한 멸망을 뜻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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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J. Calvin, “Weiss, Lipsius, Fritzsche”(in W. Sanday & A. C. Headlam).
5) “Godet, Gifford, Liddon”(in W. Sanday & A. C. Headlam), A. Clarke, J. Wesley, E. Best, J. Barmby, W. Sanday & A. C. Headlam, W. M. Greathouse, A. Barnes.
6) in 김선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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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은 아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 즉 구원 또는 사랑의 말씀(그리스도)을 믿고 순종하는 자를 축복 또는 구원하고자 하시는 일에 반하여 행한 에서와 그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야곱을 사랑하]였다고 했지만, 실제로 그 야곱의 후손들 중에서도 하나님의 미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반면에, 에서의 후손들 중에도 구원받은 자들이 있다. 그렇다면,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바울의 취지는 구원이란 인간 및 인간의 행위와 전혀 상관없는 것이며, 하나님의 자유롭고도 은혜로운 절대 주권에 의한 영원한 선택의 의지와 그에 따른 약속에 의한 것임을 주지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그 예정에 따른 역사적 부르심은 항상 인간의 믿음의 결단을 요청하는 것이다(3:21-5:21, 요 3:16. 참조: 마 22:1-14, 눅 14:15-24).
바울의 그러한 취지는 모든 인류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은 혈통이나 어떠한 종교 의식이나 도덕적 행위가 아니라,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뜻(11절)과 약속(8절)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의 뜻과 약속의 결정적 성취인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나야만 하는 것이다. 현재 새 이스라엘인 교회의 일원이라고 해서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스런 후사라고 자만해서는 안 된다. 어드만(C. R. Erdman)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산 신앙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씨가 될 수 있으며 약속의 후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출처: 최세창, 로마서(서울: 글벗사, 2000년 2판 1쇄), pp. 356-362.

필자의 www.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주석(마-계 8610쪽)/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3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HP 010-6889-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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