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오늘은 죄와 용서에 대한 것을 나누어 볼까?

죄라는 말은 좀 거북하고 유쾌하지 않은 느낌이 들지? 그리고 괜히 나와는 무관하지 않은 생각이 들고, 거기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는 생각을 어느 정도는 하고 있는게 아닐까? 그만큼 이 죄는 사람과는 뗄 수 없는 그런 말이고 상황이란다.

예수님을 믿고 나서도 이 죄는 항상 따라 다니고 이 굴레에서 벗어 났다고 하는 사람은 구원파 사람들 뿐인 것 같고…..!

너는 어떠니? 이 죄문제가 다 해결된 것 같니? 이 문제가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도 늘 어느 선을 넘지 못하고 의문만 가지고 있게 된단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보면,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했잖아! 이 문장을 잘 보면, 우리 죄를 사하여 달라고 기도하는 자는 물론 죄를 범한 사람일 수도 있고, 죄를 범한 형제를 위해서 중보하는 사람일 수도 있는 거야. 지난 번에 말했던 것처럼 이 기도는 교회 공동체에서 하는 기도라고 했잖아! 이 기도도 같은 거야. 나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하는 기도라는 거지.

교회안에 있는 그리스도인은 죄 지은 자를 용서해 주는 자라는 게 전제되어 있는 거란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교회]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는 자로 시작한다는 거야. 그러니 용서가 안되고 미워하는 사람이 있고 원수가 있는 상황에서 이 기도는 할 수 없는 거야. 그래서 그 기도 밑에 보면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6:14-15]

우리는 말씀을 그대로 믿어야 해. 이 말씀을 다르게 해석하면 안 되는 거야. 이 세상의 인간관계 속에서 큰 문제가 뭐냐면 바로 용서하지 않는 문제야. 물론 죄를 범한 사람이 명백하게 잘못을 했겠지만…. 그것을 용서하라는 게 하나님의 말씀이야.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나도 그런 죄를 범하고 있는 사람인 것을 인정해야 되는 거야. 같은 입장에 있는데 다른 사람만 잘못 했다고 용서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는 뜻이지.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고 정말 그것을 믿는다면 나도 범죄한 사람을 용서해야 되는 거지.

마18장에도 같은 내용이 나오는데, 거기도 기도와 관련된 말씀을 하신 후에 용서에 대한 비유를 하셨단다. 그것도 천국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하셨단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찌니라 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 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18:23-35]

주님은 우리에게 다 용서해 주라는 거야. 우리가 다 용서를 받았으니까. 그런데 이게 잘 안되지. 그런데 왜 주님은 잘 안되는 것을 용서하라고 하실까? 이건 두 가지 입장이 있는 것 같구나. 하나는, 내 입장만 생각해서 그럴 수 있어. 내가 너무 손해를 많이 보고 자존심이 구겨져 참을 수 없을 만큼 되었다는 현실적인 입장이고, 또 하나는, 내가 용서해 주면 그걸 알아 줘야 되는데 막무가내로 계속해서 잘못을 하고 자기가 옳은 줄 알고 계속 그렇게 살게 될까봐 용서하지 않고 내가 심판을 내리게 되는 게 아닌가…..?

마5장에서 7장에 나오는 산상수훈의 내용을 보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이런 사람이 복있는 자니 그렇게 살아라”는 거잖아? 거기에 보며 ‘원수’가 나오잖아! 그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고….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라고 하고….. 이거 할 수 있겠니? 몇 번은 할 수 있겠니? 그런데 계속 그렇게 하라는 거야.

복음서에 나온 내용은 자신의 힘으로 그걸 해 보라는 게 아니란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받은 후에 그게 가능하다고 말씀하신 거야. 사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란다. 율법주의자들은 그걸 다 행해야 된다고 강조하는 거고, 구원파는 죄문제는 다 끝났으니까 우리와는 상관없이 구원받은 거라고 하는 거야. 둘 다 잘못된 거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의롭게 됨을 얻는 거란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갈3:14]

성령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거란다. 용서도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용서할 수 있는 거고, 사랑도, 믿음도, 소망도 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그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거야. 인간은 육체로 살아 있는 동안에는 실제 생활에서 그리스도 예수안과 밖을 드나들 수 밖에 없는 존재란다. 그래서 내가 주님께 굴복할 때만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죄를 짓지 않게 되는 거야. 내가 주인이 되어 내가 옳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에 그리스도 밖에 나와 죄를 짓게 되는 거란다. 그래서 그리스도 밖에서는 죽어도 용서가 안되는 거란다. 조금 참을 수는 있어도 내 마음 속에는 용서하지 못하는 게 남아 있는 거야.

그래서 이 문제는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나를 위해 피흘리신 예수님을 바라볼때에 그 사랑을 알고 아는 자가 원수도 용서가 되어 지는 거지.

그 때서야 내 죄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가 자백하면 죄용서와 함께 정결한 마음을 주시는 거야.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1:9]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벧전1:22]

이게 진리를 순종하는 거야. 진리를 순종하면 할 수록 점점 거룩한 삶의 범위가 넓어지고 예전에 짓던 죄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게 되는 거야. 그러면 더 사랑하는 게 많아지고…. 예수님처럼.

그리고 한 가지 알아야 될 것은 ‘양심’에 뭔가 잘못된 것이 있다는 신호가 있으면 그 양심을 따라 순종해야 되는 거야. 이 양심은 믿음과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단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딤전1:19]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딤전3:9]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딤전1:5]

사랑이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온다는 거야. 그 양심이 무엇으로 깨끗하게 되는가? 하나님을 섬기게 하고 순종하게 하는 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해진 양심!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9:14]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10:22]

회개[자백]하는 것은 믿음과 같은 선상에 있는 거야. 죄라는 놈은 여기서 다 박살나는 거고…… 이 죄를 깨뜨리지 않으면 한 발자욱도 신앙의 전진을 할 수 없는 거야. 이 죄를 묵인하고 덮어두면 바리새인들처럼 외식하는 이중적인 사람이 되는 거고.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늘 용서하는 사람으로 서 있으라는 거야. 그래야 내가 범죄했을 때, 실수를 했을 때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깨끗함을 받을 수 있다는 거야.

아들아!

너는 용서하는 사람이 되거라. 다 용서해 주거라. 잘 안되면 너를 위해 피 흘리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용서받은 너 자신, 용서해 주신 하나님께 굴복하면 되는 거야. 친구들간에 양심에 걸리는 일이 없게 정직한 관계를 가지면 네가 좋은 친구가 되는 거야. 그럼 마음이 한결 넓어지고 품을 수 있게 되는 거야.

용서해 주시는 주님 안에서 승리하길 기도하마.


축복한다.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