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회 총회가 끝난 후 이어지고 있는 서울 연회를 제외한 9개 연회의 감독 이 .취임식이 대동소이 하지만, 온갖 화려한 모습으로 연일 교단지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미 총회 석상에서 이. 취임식이 끝났음에도 다시금 순서를 갖추어 취임식을 성대하게 진행함은 어찌된 일인가? 어떤 이는 전례(前例)를 따르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으나 자기를 부인하고 은혜안의 삶을 말하는 구도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드려 섬기고자하는 올바른 자세는 아니다.
그러하기에 사람마다 너나없이 개혁과 갱신을 부르짖어도 정작 본인에게 기회가 오면 머뭇거리며 그대로 이어가는 것이 오늘 우리들의 서글픈 모습이다. 이제 앞으로 총회의 순서를 바꾸든지 해야 한다. 각 연회마다 이미 11월 1일부터 감독의 집무를 시작하였으니 시작하는 첫날에 연회의 구성원 중 책임 있는 이들과 평소에 존경하든 분들을 모시고 조촐하게 예배드리며 다짐하는 것이 오히려 격조 있는 구도자들의 자세로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성경에도 “복음은 말에 있는 것이 아닌 능력에 있다”고 하였다.
이미 지나간 취임식을 다시 날 잡아 번거롭게 반복함은 좀 더 차원이 다른 변화를 기대하는 이들에게는 모두가 실망스러운 모습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22일자 당당뉴스에 사진과 함께 등장한 중부 연회 감독 이. 취임식의 내용은 한마디로 더욱 황당하다 못해 서글픈 마음이 든다. 도대체 구도자이며 내세를 말하는 성직자로써 시세(時世)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이들이다.
모두가 함께 모여 예배드림이 무엇이 문제냐 고 반문할지 모르나 그리 단순하지 않다.
그에 대한 이유는 우리 기독교의 본질자체가 허물과 죄로 멸망 받은 죄인들일 뿐이며 오직 주님의 보혈을 통하여 구원 받았을 뿐이기에 모든 영광은 주님께로 향하게 함이 대속을 믿는 구도자의 자세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사실은 지금 우리 모두는 교회가 크든 적든 하나같이 모두가 처절한 영적 전쟁을 수행중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그 어떠한 모임을 갖거나 어떤 행사를 진행 하더라도 주님 빙자하여 진행됨이면 하나같이 “신전의식”으로 진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생각을 잊는 순간 그가 어떠한 삶의 여정을 이어왔든지 그는 이미 교활한 사탄의 덧에 걸려든 것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모두가 본인보다 탁월한 분들이며 열정으로도 비범한 분들이다. 그러함에도 공교회의 책임 있는 이들이기에 거론하는 것이며 누구나 죄인의 본성 있어 나쁜 습관은 그만큼 전염속도 또한 빠르기에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고자 함이다.
오늘 우리 기독교의 위기는 무슨 세상이 깜짝놀랄 미담거리가 부족해서 당하고 있는 위기가 아니다.
자신이 믿고 고백하는 진리에 대하여 세상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들을 과감히 버리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위기일 뿐이다. 그러하기에 자신의 어떤 희생이나 봉사의 모습까지도 구도자의 모습으로 점검하고 또 점검하는 섬세함이 있어야한다.
기사 내용에 등장한 순서 두어 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고신일 감독께서 지난 2년 동안 모은 거금에 해당하는 사례비를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쉽지 않은 일이며 안한 것 보다 훨씬 귀한일이다. 그러나 그 모습은 주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 그리고 대학생이 아닌 중고등 학생은 등록금이 없어서 학교에 못 다니는 학생은 없다.
그것은 중. 고등학교에 가서 교장선생님을 만나보면 안다. 그리고 고신일 목사의 교회정도면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다.
둘째: 본 교회 장로께서 인천 시장을 비롯해 만인이 보는 앞에서 목사 부부에게 세계일주 여행권을 증정하였다.
세상을 거꾸로 살고 있는가? 도대체가 신앙의 기본을 모르는 상식이 결여 된 황당한 모습이다. 이제 못된 버릇 전염되듯이 너나없이 감독 임기 끝나면 세계일주 오르게 생겼다. 자기들 의 담임목사 격려차원 이라면 조용히 개체 교회 임원끼리 의논하여 대접할 일이다.
지금 우리가 처한 사회와 교계의 현실은 과거 그 어느 때 보다 어렵고 힘든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하루에 1천여 명의 사람들이 생의 포기를 시도하는 중에서 평균 40여명의 사람들이 이 땅을 떠난다고 한다.
그중에는 전도사와 사모를 비롯한 목사들도 있다는 슬픈 소식이다. 동일한 시대에 함께 주님을 따르는 이들이 과연 어떠한 생각들을 할까?
그리고 삶의 모습들이 대동소이하기에 기둥교회도 모두가 부유한 이들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교회에도 삶의 버거움에 눌려있는 이들이 있을 터인데 엄동설한 추위가 코앞에 다가왔는데 담임목사 부부가 세계 일주를 떠났다고 하면 어떤 마음들일까?
생각이 있고 시세를 아는 이들이라면 그동안 2년여의 세월동안 소홀했을 본래의 목양지로 돌아가 엎드림으로 영적 충전과 함께 성도를 섬김이 구도자의 바른 자세일 것이다. 물론 쉽게 가지도 않겠지만 세계 일주는 그 후에 조용히 다녀와도 늦은 것이 아니다.
들리는 소문에는 임기를 마치자마자 떼를 지어 이미 외국에 다녀왔다는 소식이다.
우리는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의 아집과 집착 때문에 주변을 살피는 일에 소홀할 때가 많다.
지금 시중에 회자되는 소문에는 미래의 신자가 되어야할 이교도들 의 선호도에서 천주교는 말할 것도 없고 불교에서도 밀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평생을 구령의 열정으로 살아간 D.L. 무디의 어록이 있다. “100명중 1명은 성경을 읽고, 나머지 99명은 그리스도인을 읽는다.”…
그동안 남다른 은혜를 누렸으면 이제는 겸손히 섬기는 자세도 필요하다.
주님께서도 말씀하신대로 “명한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 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 찌니라. (눅17:9-10) 왜 이토록 을씨년스러운 초겨울 날씨처럼 허전한 마음뿐일까?…
당신이 따르던 선지자의 이름 빙자하여 구원받은 기쁨에 감격하는 나아만 을 쫓아가 거짓으로 옷 두벌과 은 두 달란트의 전대를 받은 게하시 에게 책망한 엘리사의 말씀이 떠오른다.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왕하 5:26) …
우리는 누구나 전능자가 아니기에 허물과 부족함 또한 많은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수시로 점검하고 수정하며 구도자의 길을 간다.
그러므로 그가 누구이든지 처절한 영적 전쟁터에서 교활한 사탄의 궤계에 걸리지 않으려면 잠시라도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
혹여 자신을 예외로 인정하여 한눈파는 순간 자신을 성찰하기에 게으르면 견뎌온 지난(至難)한 세월에 비해 허물어짐은 찰나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 아픔은 비단 본인만의 아픔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한다.
이교도들은 어느 개인을 보고 평하는 것이 아닌 교인들, 목사들, 모두 어 평하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모두가 타산지석(他山之石)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