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오늘은 ‘나’에 대해 좀 더 심층적으로 나누고자 해!

아빠가 지금껏 신앙생활을 해 오면서 어려웠던 게 바로 ‘나’라는 존재였어. 나도 너처럼 이 땅에 처음 태어나 ‘나’라는 존재의식을 가지고 지금껏 살아 왔는데, 참 세월은 빠르게 지나 가는구나! 아빠가 초등학교를 전기도 안 들어오는 시골에서 다니면서 학교 친구들, 동네라는 이웃 사람들과 지내면서,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시대는 상상만 했었단다. 그것도 책에서 ‘미래 세계’라는 데서….. 그때 아빠는 “정말 그런 시대가 될까?” 라는 마음이었지만 내 나이가 50이 넘어 간다는 것은 상상해 보지도 못했단다.

​인생을 돌아 보면서 ‘나’라는 존재가 초등학교 때, 중고등학교, 대학, 그리고 결혼하여 너를 처음 안았을 때를 거쳐 왔는데, 다 ‘나’이지만 지금의 ‘나’와는 좀 다른 것은 분명하단다. 그런데 많이도 변했지만 어릴 때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 변하지 않은 ‘나’가 있다는 데 좀 놀라기도 하단다. 이것은 내가 ‘나’를 보기 보다는 너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에 대한 모습을 보시고 말씀해 주시는 게 더 정확할 지도 모르겠구나.

나는 누구인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하나님은 ‘나’를 이 땅에 보내서 무엇을 목표로 하셨을까? 이것은 지금까지 너와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나오는 거고……. 또 하나는, 하나님이 ‘나’를 어떤 존재로 만드셨을까? 이것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겠지만 아직도 좀 의문으로 남아 있는 ‘나의 존재’가 있는 거 아니니?
흙으로 만들어지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정,의로 산 존재가 되었다는 것 정도….
그런데, 아빠는 롬7-8장을 보면서 바울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지”를 모르겠는거야. 여기서 ‘나’라는 존재가 하나가 아니고 여럿이 나오는 거야. 이 곳은 율법과 죄에 대한 내용을 말하고 있잖아?

​”율법은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한다”[롬7:1]

고 하면서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다”[롬7:2]

여기서 남편은 ‘율법’이고 여인은 ‘인간’을 말하고 있는 거야. 부부관계로 맺어졌다고 한 거야. 그런데 그 남편인 율법이 죽으면 이 여인 인간은 그 율법남편에게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는 거지. 이 말은, 모든 사람들은 육체로 있는 동안 율법과 관계가 있는데 그 율법이 죽었다는 거야.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롬7:4]

율법이 언제 어떻게 죽었다는 거니?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죽으셨을 때 율법은 죽었다고 한 거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13:10]

​예수님이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율법의 저주를 받고 죽으셨기 때문에, 이제 율법은 우리[사람]에게 뭐라 하지 못하게 된거야. 왜냐하면 율법은 죄인에게만 ‘정죄’를 하지 죄가 없는 사람에게는 아무소리를 못하는 거잖아?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 지고 형벌을 받으셨으니까 이제 나는 죄가 없어진 거잖아? 죄값을 다 치루었으니까 죄인이 아니고 의인이 된 거야. 의인이라는 것은 죄가 없는 사람을 말하잖아?

예수님은 사랑으로 십자가를 지시고 죽어 죄문제를 해결해 주시니까, 죄인을 향한 율법의 정죄는 할 수 없게 된 거야. 그래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하는 거란다. 이 사랑은 죄를 덮어 주잖아! 대신 저주를 당하잖아! 마치 자신의 죄인것처럼 나의 죄를 해결해 준 거잖아! 자기 유익을 생각하지 않고 남의 유익을 생각하고 남을 살린 거잖아? 이게 바로 예수님의 사랑이야.

그래서 율법이 죽었다고 하는 거야. 율법이 없어진 게 아니라. 이걸 오해해서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으니 죄책감도 없고 죄는 우리와 상관없는 게 됐다!”하면서 방종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도 하는 거야.
율법은 하나님나라의 울타리를 쳐 놓은 것과 같은 거야. 그래서 그 울타리를 넘어 가는 자들을 정죄하고 죄를 가르쳐 주어서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는 거지. 죄를 짓지 못하게 한다든지, 죄인을 용서한다든지, 죄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는 거야.

반면에 복음은 죄인을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로 죄인을 살리고 죄를 짓지 않는 생활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준 거야. 그리고 성령님을 보내 주셔서 아예 사람 속에 들어와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거지. 이게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요 예수님의 은혜라는 거야. 그래서 오직 예수! 오직 십자가! 오직 은혜! 오직 성령! 이라고 하는 거란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야, 우리가 예수님과 결혼[믿음]해서 하나님을 위한 열매[성령]를 맺게 된 거야.

율법이 십자가에서 죽은 것처럼, 이제 우리도 그 율법에 대하여 죽은 거야.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찌니라[롬7:6]

​여기서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은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을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 죽었다는 거야. 율법을 “잘 지키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거야”라는 생각을 갖게 되면 이 사람은 계속 “율법을 어떻게 하면 잘 지킬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노력하게 되는 거야. 마치 유대인들처럼.

​율법을 지키는 것은 좋은 거야. 그리고 그렇게 해야 되는 거야. 그러나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지키는 것은 잘못된 거야. 자기 힘으로 구원을 이루려고 하는 게 되는 거지. 이게 작은 차이 같은데 굉장히 큰 차이라는 것을 알아야 된단다.

이런 사람들 눈에는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까지도 늘 이 율법의 잣대를 가지고 재는 거야. 오직 기준이 율법이니까. 그리고 비판하기를 잘하는 거야. 그런데 성경은 이런 사람들을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롬2:3]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유1:9]

​하였단다. 사람은 모두 율법을 범할 수 밖에 없는 거니까 남을 판단하지 말라고 한 거야. 심지어 천사장 미가엘은 마귀에 대해서까지 비판하지 않고 심판자이신 주님께 맡겼다는 거야. 그 정도로 비판은 사람이 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거란다.

아빠의 약점 가운데, 부끄럽지만 이게 있단다. 비판적인 태도가 있고 비판하는 게 있단다. 요즈음 이것 때문에 주님께 회개한 적이 있는데, 무의식 중에 범하게 되는 게 바로 비판하는 거란다. 그래서 주님께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면서 의식적으로 비판하지 않는 것을 연습하고 있단다.

율법적인 사람은 “자기는 옳다”는 입장에 늘 있고, 남의 잘못을 찾아 내어 정죄하는 거야. 반면에 복음적인 사람은 너그러운 마음[온유]으로 범죄한 자를 긍휼히 보고 덮어주고 살 길을 찾아 주는 거야. 왜냐하면 이 사람은 주인되신 하나님께 굴복하여 그분의 말씀을 듣고[겸손] 있기 때문이지.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롬7:5,7-8]

​하나님이 율법을 통해 “탐내지 말라”고 하시면 실존적으로 독립적인 존재인 ‘나’는 ‘탐내고 싶은 마음’이 꿈틀 대어 “왜 탐내지 말라고 했을까? 무슨 이유가 있을거야! 가져 볼까?” 하면서 내 육체속에 있는 ‘죄’가 활동하여 결국 죄를 범하게 된다는 거야. 이 ‘죄’는 늘 율법을 통해서 기회를 얻는 거야. 마귀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을 유혹했잖아? “하나님과 상관없이 네 자유를 마음껏 누려 봐! 내 말을 들어 봐!”하면서 하나님을 떠나게 하고 말씀을 잊게 만드는 거야.​
결국 인간[아담]은 죄에게 팔린 거야. 어디에서? 육신에 속하여.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7:14-17]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6:16]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4:9]


사단은 예수님에게까지 와서 유혹한 거야. 둘째 사람 예수님은 말씀으로 이겼지만 첫사람 아담은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결국 사단의 종이 되어 죄에 지배당하는 암흑의 역사가 시작된 거지.

아들아!

​율법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죽었고 너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율법에 대하여 죽은 자로 살거라. 그래야 생명이 너를 지배하여 생명으로 살아지는 삶이 되는 거야. 은혜가 지배하는 삶이 되어야 행복한 삶이 되는 거야. 이런 삶은 주기도를 무시로 할 때 더 쉬워진단다.

​요즈음 감기 걸린 사람들이 많단다. 네 동생도….. 아빠도 시골 다녀온 후에 몸살기가 있어 잘 먹고 잘 쉴려고 하고 있단다. 건강은 스스로 잘 지키거라. 네 몸은 네게 아니라 주님의 것이니까!
축복한다.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