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기도를 마치고 상경을 했습니다.
고 나원용 감독님 발인예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랜만에 종로와 광화문 거리를 걸었습니다.
종교교회에 조금 일찍 도착 했지만 이미 많은 분들이 자리를 하고 계신 것을 보고
감독님을 향한 애정이 어떠한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원용 감독님이 걸어가셨던 목회자의 길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확인하는 장례예식이었습니다.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 참 가슴이 벅찬 예식이었습니다.
혹시 동대문교회 교인들은 오시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헌화를 하고 퇴장하시는 홍정수 장로님을 10여년 만에 뵈었으나
최근 여러가지 일로 마음 고생이 많으신 흔적이 초췌한 얼굴에 그대로 묻어나 있는 듯 하여 두 손만 잡고 어떤 말도 길게 나누지 못하고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식사 후 발길을 옮겨 동대문으로 항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ㄱ”자 한옥 건물이 철거된 후 처음 옛 터를 찾은 것이었는데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씁슬한 마음으로 성곽 주변을 걸었습니다. 눈부신 햇살 사이를 비집고 눈에 들어온 보구여관과 이대동대문병원 안내 동판! 혹시 동대문교회에 관한 안내 동판이 어디 있는가 이리 저리 둘러보았지만 어느 곳에서도 기념 동판(서울시가 약속한 것이었으나…)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벤치에 앉아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읇조리듯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스스로 질문해 보았습니다.
종교교회와 동대문교회의 모습이 왜 이리 다른지 말입니다.
종교교회도 교회 건축과정에서 강남 일원동에 수천평을 준비하는 등 추진을 했었지만 결국 현 위치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택을 했었다는 것과 나감독님 은퇴 과정에서 생긴 후임자 선정과 갈등의 문제를 극복한 이야기를 장례예식에 들은 것이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십여년간 진행된 수많은 법적 다툼에 동대문교회는 이리 저리 찢기고 갈려 상처 투성이가 되어 있는데 과연 누구의 책임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그러나 누구의 책임이라고 단정한듯 이 안타까운 상황을 어찌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일 년 여 가까이 기도회를 진행한 천막 앞에 잠시 머물다 발길을 옮겨 지하철을 타려던 중 혹 옛 동대문보존교회 건물은 어떤가 싶어 가보니 안내 간판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어 마음이 편치 못했습니다. “보존”이란 글자를 아예 보이지 않게 가리거나 혹은 새롭게 만들어 달았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돈이 없어 저리 하진 않았겠지만 이것이 동대문교회의 현실일 수 밖에 없는 모습에 씁슬하기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