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날을 여는 청소녀 쉼터.
좋은일을 하는 곳입니다.
위기에 처한 청소녀들을 돌보는 곳이니까요.
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없어져야할 기관으로 쉼터의 범위를 비롯 확대되는건 바람직한 선교 전략이
아닌줄로 압니다.
왜, 기독교 농민회라든지 노동청년회 등의 선교 영역이 왜 없어지다시피 했을까요?
그야 당연히 당사자들의 운동영역화 했기 때문이지요.
노동자나 농민들의 역량이 종교에 기대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왜 청소녀나 청소년 영역의 일은 확장되지 말아야 하고 축소 지향적으로 가야 할까요?
위기 청소년들이나 위기 가정이 줄었단 말일까요?
그것은 아닙니다. 위기 청소년이나 위기 가정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는 형국입니다.
그럼 왜 축소지향이어야?
소위 매맞는 여성들의 쉼터는 예전만한 필요성이 별로 없어졌습니다.
왜일까요? 매맞는 여성이 없어서요?
그것보단 법률이나 제도적 또는 여성들의 사회인식능력이나 자신만의 경제력 상승 등으로
여성들이 매맞는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수 십배 이상 상승했기 때문입니다.
청소년이나 소녀들을 위한 쉼터 등의 영역이 줄어야 하는 이유는
마치, 아이들 밥먹이는 것이 부모의 영역에서 공적 국가적 영역으로 방향을 바꾼것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합니다.
결식 아동을 책임지는 문제는 중요하지만 그것을 예전처럼 개인이나 교회 등이 책임질 영역을 벗어나 공적 영역에서 거의 다 흡수한것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합니다.
곧, 위기, 가출, 학업중단 청소년 청소녀의 문제는 국가가 책임지고 나서야 할때가 이미 지났다는
저의 인식입니다.
무상교육급식보육 등으로 전체를 커버할 국력을 이미 갖춘 대한민국이고 대외원조도 2조원이상이나 하는 우리이기에 그렇습니다.
실정이 어떤지 모르는 감독회장과 서울연회 감독을 끌어들여 감리회관 앞에서의
성탄 그 행사를 주관한 새날 청소녀 쉼터측의 자기 성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