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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의 주님을 맞을 준비는 되었는가?

작성자
원학수
작성일
2015-04-27 11:08
조회
1355
심판의 주님을 맞을 준비는 되었는가?

누가복음 3:7-9

예수님은 마태복음 25:1-13절에서 열 처녀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다섯 처녀들은 등잔에 기름을 채우고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가 신랑이 왔을 때 혼인 잔치에 참여하였으므로 슬기로운 처녀들이라는 말을 들었으나 다섯 처녀들은 신랑이 더디 온다고 기름을 준비하지 않고 지내다가 신랑이 왔을 때 맞이하지 못하고 슬피 울며 후회함으로 미련하다는 책망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이 비유를 보면 장차 철장권세를 가지고 재림하실 심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중으로 임하실 때 믿음으로 깨어있는 성도들은 모두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영광을 얻게 되지만 믿음으로 깨어있지 못하고 준비하지 않은 성도들은 도적같이 임하시는 주님을 알지 못하고 신랑을 잃어버리고 후회하며 탄식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비유를 통해서 늘 준비하며 기다리는 지혜로움과 준비하지 않고 게으름을 부리다가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탄식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서양 속담 중에 “기회의 앞은 머리털이 있어서 앞에서는 잡을 수 있으나 기회의 뒤에는 머리털이 없어서 지나간 뒤에 아무리 노력해도 잡을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버스가 올 때 앞에서 정지시켜야 버스를 탈 수 있지 떠나간 뒤에 좇아가며 안타깝게 불러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기다리는 성도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혜로운 5처녀들과 같이 미리 미리 준비를 하고 신랑되시는 주님을 영접할 준비를 하고 기다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눅 3:9)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주님을 영접할 준비를 하는 성도들이 되십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주님을 영접할 준비를 갖추는 것입니까? 살펴보며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우리의 모습부터 성도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세례요한은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무리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고 책망하였습니다.
왜 이들도 유대인들이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들인데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책망을 하였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외형적으로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이요 이스라엘의 백성이지만 이미 독사와 같은 사탄의 유혹을 받아 범죄 한 죄인들이기에 그런 책망을 받은 것입니다.
창세기 3:1-5,“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고 유혹하였습니다.
사탄 마귀에게 유혹을 받아 범죄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속에 사탄의 형상, 뱀의 형상을 지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의 눈에 보인 사람들은 영혼을 죽이고 해치는 독사의 자식들로 보였을 것입니다.
사탄의 형상을 지닌 인간은 그때부터 시기와 질투와 미음의 사람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창세기 4:6, 가인과 아벨은 같은 피를 나눈 한 형제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가인은 아벨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마음에서 안색이 변하였습니다.
안색이 변했다는 것은 곧 마음의 변화를 가져왔다는 증거입니다.
얼굴은 마음의 거울입니다. 독심술을 터득하지 못한 사람이라도 상대방의 얼굴을 보아서 마음의 변화를 짐작하게 됩니다.
마음의 변화에 따라서 얼굴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부흥회에 참석하고 은혜를 받으면 성도들의 얼굴에서 기쁨이 충만하고 밝아진 모습들을 보게됩니다.
그러나 가정에 우환이 있고 재난을 당하면 그 얼굴에서 수색이 완연해지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바벨론의 왕궁에서 포로로 있을 때 왕에게 포도주를 올리는 직업이었습니다.
어느 날 고국 예루살렘에서 올라온 사람들을 통하여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고 성벽은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였습니다.
. 그러나 왕으로부터 고국으로 돌아가 무너진 성과 성벽을 다시 쌓고 재건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기쁨으로 돌아가 재건사업에 힘을 씁니다. 느헤미야는 의로운 근심으로 수심이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1장에 보면 한나가 마음이 심히 괴로워 성전에서 울며 기도할 때 엘리 제사장은 술에 취한 줄 알았으나 한나는 은혜를 받을 줄 믿고 그의 얼굴에서 수색이 없어졌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상 21:13, 성군 다윗도 사울의 칼을 피하여 가드 왕 아기스의 손에 보호를 받을 때에 자신의 신분이 탄로 나게 되자 미친 체하며 수염에 침을 흘리는 모습으로 벽을 손톱으로 긁적거리자 미친 자를 쫓아보내 라고 하여 그의 칼에서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람의 얼굴은 그 상황에 따라서 변하며 달라지는 것입니다.
40대 이후의 얼굴모습은 자기의 책임이 있다고 말합니다.
나는 오래 전 읽었던 콩트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 내용은 어느 여학교에 두 여학생의 얼굴 모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름다운 미모의 얼굴을 가진 여학생과 얼굴이 아무리 보아도 예쁜 데가 하나도 없는 여학생이 한 반에서 공부하였습니다.
아름다운 얼굴의 여학생은 돈 많은 재벌의 아들에게 시집을 갔습니다.
그러나 못생긴 여학생은 시골 장로의 가정에 시집을 갔습니다.
20여 년 후 그들은 우연히 거리에서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얼굴 모습은 너무도 대조적이었습니다.
돈이 많은 남편이 그 돈으로 방탕하고 하지 못할 나쁜 짓을 다 하였으므로 그의 가정은 걱정과 염려에 시달려서 아름다웠던 그녀의 얼굴 모습은 추한 꼴로 바뀌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못생겼던 여학생은 신앙으로 연단을 받은 평화스러운 가정에서 늘 기쁨과 감사함으로 살다가보니 얼굴모습도 인자하고 덕스럽고 지성미로 넘쳤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처럼 바뀐 것입니다.

창세기 21:1-5,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을 머슴살면서 외삼촌의 딸 라헬과 레아를 아내로 얻었으며 많은 양떼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외삼촌이며 장인인 라반과 그 아들들의 안색이 변했을 때 야곱은 그곳을 떠나고 맙니다. 안색의 변함은 가까운 사람도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스데반은 자기를 돌로 쳐죽이는 원수들 앞에서도 천사의 얼굴 모습으로 바뀌면서 죽어갔습니다.
주님은 근심하는 얼굴도 싫어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주를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너의에게 평안을 주노니....” “평안할 지어다”했습니다. 주님은 평화스러운 모습을 원하십니다.
성낸 얼굴, 미워하는 독사의 얼굴을 원치 않습니다. 사랑의 얼굴 감사의 모습을 원하십니다.

2, 우리 성도들의 본분을 잘 지켜 왔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창세기 3:9-11, 범죄 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피하여 숨었던 곳은 동산의 나무 사이였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 사탄에게 속아 범죄 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하는 행동이었습니다.
범죄 한 인간은 스스로 양심에 가책을 받아 정상적인 생명의 궤도에서 벗어난 행동을 두려워했습니다.
아담의 정상적인 생명의 위치는 동산의 나무 사이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범주 안에서 참 자유와 평화를 누리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각자가 지켜야 할 위치가 있습니다.
인격과 지위와 사명에 따라 각자의 위치가 정해집니다.
그러나 자신의 위치를 지키지 못할 때 사람들은 자기의 본분을 상실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분수에 지나친 행동을 할 때도 위험합니다.
한 순간의 실수로 그들의 위치가 바뀌면 정상적인 위치를 회복하는 데 많은 시간의 고난과 수고를 하게됩니다.

어느 농가에서 힘든 일만 하던 나귀는 자기의 신세를 돌아볼 때 한탄하였습니다.
자기는 힘든 일과 무거운 짐을 운반하면서도 주인에게 매만 맞고 풀만 먹는데 마루 밑의 개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으면서도 주인의 품에도 안기고 주인의 손을 핥으며 사랑을 받고 좋은 음식만 먹는 것이 한없이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나귀는 개에서 며칠만 서로의 위치를 바꾸어 살자고 하였습니다.
개는 쾌히 승낙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귀는 개처럼 마루 밑에 엎드려다가 주인이 올 때 꼬리를 흔들며 깡충깡충 뛰면서 주인을 혀로 핥고 머리를 주인의 가슴에 비벼대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깜짝 놀라 이 나귀가 미쳤다고 하며 몽둥이를 가지고 와서 나귀를 심히 때렸습니다.
결국 나귀는 자기의 범주와 위치를 지키지 못하고 과도하게 행동을 하다가 주인에게 매를 맞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의 분수를 알지 못하고 행동을 할 때 환영을 받지 못하고 화를 받은 것입니다.

창세기 28:11-15, 야곱은 형 에서의 칼을 피해 도망하는 중에 벧엘 광야에서 날이 저물어 유숙하게 되었습니다.
그 밤에 야곱은 하늘 보좌에 상달된 사다리에서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모습을 꿈에 보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그곳에도 하나님이 계심을 믿고 돌 단을 쌓고 기름을 부어 그곳을 성전 터를 삼을 것을 맹세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느 곳에나 계시며 어느 곳에서나 함께 하시며 역사 하심을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야곱의 맹세의 기도는 이루어져 마침내 큰 물질과 자손의 복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열왕기상 19:18, 아합왕과 왕후 이세벨의 학정 밑에서 엘리야는 혼자만 당하는 고통으로 생각하고 비관하였으나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7천명의 종들이 있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3. 우리는 믿음의 열매를 잘 맺었는가? 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13:7-9, “포도원 주인이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3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리라 어찌 땅만 버리겠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했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듯 주님은 우리 성도들에게서도 선한 열매를 구하십니다.
열매를 많이 맺었으면 주님은 나를 더 사랑할 것이나 만약 내가 열매를 맺은 것이 없어서 열매를 찾지 못한다면 주님은 나를 더 이상 돌아보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어디에 소속했느냐에 따라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좋은 나무에서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에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함이니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육체에 속하였느냐 성령에 속하였느냐가 관건입니다.

우리는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열매의 결과에 따라 심판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선한 열매를 맺은 사람들은 양의 편에 두시고 열매가 없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은 염소 편에 두신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그 열매들이 여러 가지가 있음을 알게 해 줍니다.
잠언 12:14, 입의 열매, 이사야 57:19, 입술의 열매, 잠언 11:30, 의인의 열매, 잠언 31:31, 손의 열매, 시편 127:3, 이사야 13:8, 태의 열매, 잠언 :13, 이사야 3:10, 행위의 열매, 이사야 10:12, 마음의 열매, 호세아 10:3, 거짓의 열매, 아모스 6:12, 정의의 열매가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열매를 맺는 다는 말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
히스기아 왕은 그의 선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맺었으므로 죽음이 눈앞에 왔을 때 벽을 향해 울며 기도하자 하나님은 히스기아의 아름다운 선한 열매를 보시고 15년이나 생명을 연장하십니다.
사도행전 10장을 보면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는 선한 열매를 많이 맺었으므로 그와 그의 가족과 친지와 이웃과 벗들이 구원을 받습니다.
사도행전 9:36, 욥바의 도르가요 다비다라고 하는 여자는 그가 생전에 어려운 이웃을 위해 쌓은 선한 열매로 죽었으나 다시 부활하는 축복을 받습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작품 가운데 파 한 뿌리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인색한 여인이 파밭을 손질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거지가 구걸을 하였습니다.
배고파 죽을 지경이나 파 한 뿌리만 달라는 것입니다.
인색한 여인은 파밭을 손질하다가 벌레 먹은 파 한 뿌리를 버리느니 거지에게 던져 주었습니다.

천사는 여인의 선행을 한 가지 만이라도 찾아보려고 머리를 짜고 선행의 책을 뒤적거리다가 마침내 한 가지를 찾아내었습니다.
그것은 여인이 벌레 먹은 파 한 뿌리를 거지에게 던져 준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는 심판 주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심판 주는 그것 가지고는 여인이 구원을 받기가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천사에게 그 여인을 구원하는 방법으로 벌레 먹은 파 한 뿌리로 그 여인을 구원하여 천국으로 데려 가라는 것입니다.

. 그러자 여인은 지옥에서부터 파뿌리를 붙잡고 올라가는데 주변에서 그것을 본 많은 사람들이 여인의 몸을 붙잡고 매어 달렸습니다.
그러자 여인은 자기에게 매달리는 사람들을 발로 차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만 파뿌리가 끊어져 여인은 지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나는 과거에 어떤 씨앗을 심었으며 또 어떤 열매를 맺는 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폼페이의 최후의 날 화산이 폭발하여 화산재가 덮였을 때 모든 사람들은 그때 행동을 하던 그 모습대로 굳어져 화석이 되어버렸습니다.
음란한 행동을 하던 사람들은 음란을 행하던 모습대로 선한 일을 한 사람들은 선한 일을 한 모습대로 일하던 사람은 일하는 모습대로 싸우는 사람들은 싸우는 모습대로 굳어져서 오늘까지 화석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 어떻게 최후의 날이 우리에게 닥친다 해도 우리의 행동이 부끄러움이 없는 행동으로 남아 기억되어지고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맺는 삶을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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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4-27 11:14

    설교가 너무 길어서 줄엿습니다.
    문장이 이상하지만 이해 하셔요.
    본인의 설교집 5권이 필요하신분 말씀하세요
    미력하나마 설교집 5권을 제작하였습니다.
    각 권마다 설교 50편씩 실었습니다.
    cd 2장도 있고요.
    인쇠비만 주시면 보내 드리겠습니다.
    대체로 성경 본문을 중심으로 설교하려고 했는데
    참고가 되면 열락 주세요

    010-8875-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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