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여러분께.
현재 ‘감리회소식’이 ‘자유게시판’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정치적 입장표명이나 감리회정책과 관계되지 않은 내용 등
‘감리회소식’과 거리가 먼 내용의 글은 ‘자유게시판’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작성자
원학수
작성일
2015-03-26 17:47
조회
1506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창세기 4:1-12, 누가복음 22:3-6.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 먹은 죄로 인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근본 된 토지를 갈며 살았습니다.
인류 최초의 농부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아들 둘을 낳았는데 가인과 아벨이라는 두 아들입니다.
아담은 큰 아들 가인을 낳고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아들을 낳았다.”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아벨을 낳았습니다.
큰 아들 가인은 부모의 뒤를 이어 농사를 지었고, 작은 아들 아벨은 양을 치는 목동이 되었습니다.

가인과 아벨은 어느 날, 함께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는데, 농사를 짓는 큰 아들 가인은 자신이 지은 곡물로 제사를 드렸고, 작은 아들 아벨은 양을 잡아 피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는 물리치시고 받지를 않으셨지만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습니다.
그러자 가인은 피를 나눈 형제인 동생 아벨을 쳐 죽이고 말았습니다.
어떤 이는 이 일을 두고 아벨은 양을 죽여 피의 제사를 드려서 하나님이 받으셨으나, 가인은 곡물로 드려서 받지 않았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피의 제사만을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레위기 2:16, “제사장은 찧은 곡식 얼마와 기름의 얼마와 모든 유향을 기념물로 불사를지니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고 하였습니다.
민수기 15:20, “너희의 처음 익은 곡식 가루 떡을 거제로 타작마당의 거제같이 들어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가인이 곡식으로 제물을 드렸다고 받지 않고 거절하신 것이 아니고, 아벨이 피의 제사를 드렸다고 받은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누구의 제사를 받으시고 누구의 제사를 물리치셨든지 모두 하나님의 뜻이요 섭리입니다.

창세기 27장에 나오는 야곱이 형 에서를 속이고 아버지를 속여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은,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하신 말씀과 같은 노력이요, 하나님의 섭리이며, 사무엘상 16:10-12,에서 나오는 이새의 아들들 8명 중에서, 7명의 아들들 가운데서 왕을 세우시지 않고, 말째아들 들에서 양 치던 다윗을 택하여, 머리에 기름을 붓게 하시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신 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뜻인 것입니다.

가인은 동생 아벨만 죽이면 하나님의 응답이 자기에게 임할 줄 알았습니다.
아벨만 없어지면 자신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 범죄의 행위는 그냥 묵과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가인아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가인이 저지른 행위를 모두, 아시고, 보시고, 계신 하나님의 질문입니다.
그 하나님은 이 시간 우리에게도, “사랑하는 자녀들아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고 물으시는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가인에게 물으시는 물음이 나에게 임하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이라고 대답을 할 것입니까?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첫째, 네가 분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냐?
자기의 잘못과 부족함을 깨닫지 못하고, 화를 내는 가인에게 “왜 악한 생각을 품느냐?”고 물으시는 하나님의 물음이십니다.
남이 잘되는 것을 못 보고 질투하며 분내는 자를 향하여 하나님은 “네가 분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야?”고 물으십니다.
마귀가 주는 악한 생각이 범죄의 유혹으로 이끌어 가기 때문입니다.
우리속담 가운데 “사촌이 논을 사면 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습니다.
가인과 같이 악한 생각을 품은 자의 심술을 꼬집는 말씀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으나,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을 때, 가인의 안색이 변했습니다.
누구의 제사를 받고, 누구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뜻입니다. 누구의 것은 받든지 안 받든지 그분의 뜻입니다.

출애굽기 33:1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하나님께서 제사를 받으시든지 물리치시든지 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이며 뜻이며 자유입니다.
하나님이 제사를 받지 않으신다고 다른 사람을 시기 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고, 하나님이 자기의 제사를 받으신다고 다른 사람 앞에서 교만하고 무례한 행동을 저지를 수도 없습니다.
가인은 아벨의 제사만 받으시고 자기의 재산은 물리치시는 하나님께 다시 정성을 다하여 제사를 받으시도록 준비하는 자세로 기회를 마련했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오히려 시기와 분 냄으로 동생 아벨을 쳐 죽이고 말았습니다.
내가 하지 못한 일을 다른 사람이 할 때, 시기와 불평은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나도 그와 같이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준비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했어야 합니다.
형제에 대한 분노는 하나님께 향한 분노요, 형제에 대한 비판이나 판단은 하나님께 향한 비판과 판단이라고 했습니다(약 4:11).
가인의 분함은 시기와 질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피를 나눈 동생, 아벨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에 대한 질투와 분노를 나타낸 것이었습니다.
그의 분노는 안색을 변하게 하였습니다.
마음의 분노는 안색에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얼굴은 항상 부드럽고 평화로운 얼굴을 지녀야 합니다.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도님들의 마음에 분노를 드러내는 마음이 싹트고, 얼굴에 분노함이 나타나게 된다면, 더욱 큰 죄를 끌어들이게 될 것입니다.

마음의 분노는 얼굴에 나타납니다.
얼굴의 분노는 입으로 나타납니다.
입의 분노는 행동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부덕한 결과를 낳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다”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새가 우리의 머리위로 나르는 것을 우리는 막을 수는 없지만, 우리의 머리위에 둥지를 짓는 것은 막을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탄 마귀가 우리의 마음을 유혹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어도,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는 것은 막을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마귀가 수시로 우리를 유혹하여 범죄 게 하는 유혹을 막을 수는 없어도,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은 것은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가롯인 유다는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지 않고 유혹에 넘어가, 예수님을 은 30에 팔아버리는 배반자가 되고도, 회개하지를 않았으나,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의 목전에서 세 번씩이나 모르노라고 부인을 했으나, 즉시 밖으로 뛰어나가 통곡하며 회개하여, 마귀가 마음속에 자리 잡는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잃을 뻔 한 사도직을 회복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베드로를 찾으셔서, 잃었던 사도직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시기와 분노는 마음에 있을 때, 성도들은 이겨야 합니다.
성도들이 마귀의 유혹을 이길 때, 더 큰 죄를 범하지 않습니다.
마귀가 우리 마음속에 틈타지 못하도록 승리하시는 성도들이 다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
가인은 마음에 시기와 분 냄을 물리치지 못했을 때에, 얼굴에 나타났고, 얼굴에 나타난 혈기는 행동으로 나타나, 피를 나눈 형제 아우를 죽임으로,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아벨을 죽이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을 것입니다.
인류가 시작되면서 아직은 아무도 죽는 자가 없었기에, 죽음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며, 아우 아벨을 죽이기까지 하려고 하는 마음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다만 구원함과 시기를 폭력으로 풀어버리려고 했을 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악한 생각은 악랄한 동기를 낳게 하였고, 무자비한 폭력은, 동생 아벨을 쳐 죽이는 그 엄청난 비극의 결과를 낳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가인아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네가 왜 아우를 죽였느냐?”는 질문입니다.

가인이 하나님의 첫 번째 물음, “네 분함은 어찜이며 네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냐?”고 묻는 물음에 가인이 대답을 하고 회개를 했더라면, 이처럼 무서운 죄를 짓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18:6, “누구든지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나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소자 하나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이처럼 귀하고 소중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한 생명이 귀한 것이, 천하보다 더 귀하다는 것입니다.
“삼가 이 소자 중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마 18:10)고 했습니다.
소자 하나를 실족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 상달되어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소자 하나를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은 천사를 동원하여 지키시고 돌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자 하나라도 실족케 하고, 마음에 상처를 준하면, 그의 천사들이 하나님께 호소하고 송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소자 하나를 실족케 하는 것은 하나님께 상달되어 심판을 받게 됩니다.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마 10:42) 했습니다.
하나님은 적은 선심도 귀하게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하물며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주께로 인도하는 자를 더욱 귀하게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이웃과 형제를 돌보고 지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귀하게 보시는 사랑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를 돌보고, 고난당하는 자, 눌린 자, 억울한 일을 당한 자, 슬퍼하는 자를 돌아보기를 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도는 가정을 돌보고, 이웃을 돌보며, 국가와 민족을 돌보고, 지킬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위해서 기도하고 주님께만 인도해야 합니다.

가롯 인 유다는 예수님의 책망을 받고도 멈추지 않고 어둠속으로 나아가 대제사장들에게 예수님을 은 30에 팔아넘기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입맞춤으로 넘겨 주고 말았습니다.
회개의 기회를 버리고 죄를 더 악화시켰습니다.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형제를 돌보아 준, 양과 같은 사람에게는 축복과 상을 주셨지마는, 이웃과 가난한 사람을 돌보지 않았던 염소와 같았던 사람들에게는 저주와 형벌을 준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아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 물으시는 하나님께, 가인은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이니까?”라고 오히려 퉁명스럽게 대답을 한 가인과 같은 비 양심의 인간들이 활개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우리 신앙인들은 책임감을 느낄 줄 아는 양심을 지녀야만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물속에 빠져서 죽어가는 데 외면하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기차 길에서 자살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를 구출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직접 살려주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죽어가는 사람을 대로 방치하고 외면해 버린다고 하면 그것은 간접 살인의 행위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주위에는 사망의 길로 빠져가는 영혼들이 수다하게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주님께로 인도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간접 살인자가 됩니다.
그 영혼의 피 값을 갚아야만 합니다.

바울은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그도 살인자”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사마리아와 유대와 온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죽어가는 영혼들의 피 값을, 우리에게 취하시지 않으시려고 걱정하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가인이 아무도 모르게 저지른 살인이라 할지라도, 땅은 아벨의 피를 마셨고, 그 피 값은 하늘을 향해 호소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세상은 책임을 알지 못할지라도,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셋째로, 네가 무엇을 했느냐?
인간은 행한 대로 하나님께 심판을 받습니다.
선을 행하여 선한 열매를 맺었으면 축복과 상을 받을 것이고, 영생을 얻게 될 것이며, 악을 행하여 악한 열매를 맺었으면 심판을 당할 것입니다.
그 날에 심판을 받을 때,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행한 대로 행위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어떤 열매를 맺었는가?
내게 맺힌 열매는 무엇인가? 에 따라서 심판과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가인에게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의 물으심은, 하나님이 모르셔서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아담이 범죄 했을 때, 찾아오신 하나님은, “네가 어찌 이렇게 하였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왜? 동생 아벨을 죽이기까지 하였느냐? 는 물음입니다.
그의 양심의 소리를 듣고 싶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아담의 행위를 알고 계셨던 하나님은, 아담에게 “아담아 네가 어찌 이렇게 하였느냐?”고 물으셨으며, 가인의 행위를 아시는 하나님은 “가인아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것은 자기 스스로 죄를 깨닫게 하시고,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질문인 것입니다.
끔찍한 살인의 죄를 회개시키시려는 사랑입니다.
아담은 자신의 행하였던 죄 값으로, 땀을 흘리며 땅을 파는 형벌과 죽음의 고비를 넘겨야만 했습니다.
죄 값은, 그에 따라 형벌이 있는 것입니다.
가인은 동생 아벨을 쳐 죽인 죄 값으로 땅을 갈아도, 땅은 그 효력을 나타내지 못하는 형벌을 받고 살았습니다.

다윗은 충성스러운 신하 우리아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취하여 첩으로 삼은 죄 값으로, 그의 아들 압살롬이 첩들을 데리고 대낮에 옥상천막아래에서 음행을 저지르는 수치와 배반을 당하였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에 명령을 어기고 다른 길로 도망한 죄 값으로, 고기 뱃속에 들어가 3일 동안이나 고통을 당해야만 하였습니다.
가롯 인 유다는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더 가중시키다가 영원한 배반자가 되었고 스스로 목을 매었으나 거꾸로 떨어져 창자가 터져 죽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살인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남의 생명을 끊고 해치는 것만이 살인은 아닙니다.
남을 중상하고, 모략하고, 험담하고, 말질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내고 살인하고 죽이는, 보이지 않는 비수요, 칼인 것입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말하기를, “들으라. 너희는 용감한 자를 죽이고 있다. 더러는 살선 눈으로, 더러는 달콤한 말로, 추악한 놈은 입맞춤으로, 용감한 자는 검으로........죽인다.”고 말했습니다.

무관심함으로 남에게 치명상을, 퉁명스러움으로 이웃의 기쁨을 거두고, 거짓사랑으로 참사랑을 깨뜨려 버리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질투는 미움을, 미움은 화를, 화는 폭력을, 폭력은 살인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향하여 증오하거나 미운 생각이 떠오르면 그것은 살인을 저지르는 시초임을 알고 즉시 물리쳐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도 실어하시고 금하시는 일이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이 고난을 당하고 죽는 것도 원하시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이 억울하게 해를 당하는 것도 막으시고 돌보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고 있음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충성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니엘 3:16-18, 느부갓네살 왕이 바벨론 두라 평지에 높이 60규빗, 넓이 6규빗의 금 신상을 만들고 모두 절하라고 하였습니다.
만약 절하지 않으면 즉시 극렬히 타는 풀무에 던져 넣으리라 했습니다.
그러나 유다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느부갓네살 왕이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에게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그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니 짐짓 그리하였느냐? 이제라도 너희가 예비하였다가 언제든지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어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고 위협합니다.
그러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느부갓네살 왕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하옵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의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라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 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 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하옵소서.”하고 말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분이 가득하여 “그 풀무를 평일보다 칠 배나 뜨겁게 하라” 하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결박하여 풀무 가운데 던지게 하니, 이 사람들이 풀무 가운데 던질 때, 붙든 사람들을 태워 죽였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결박된 채 풀무 가운데 떨어졌습니다.
그때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모사들에게 묻기를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냐?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다.”하고 풀무 아구 가까이 가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고 부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서 나왔는데, 불이 능히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슬리지 아니하였고, 고의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탄 냄새도 없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말하기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 사자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 몸을 버려서 왕의 명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방언하는 자가 무릇 하나님께 설만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으로 거름 터를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라”고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도에서 더욱 높였습니다.



전체 7

  • 2015-03-26 17:56

    본인의 설교집 5권이 필요하신분 말씀하세요
    미력하나마 설교집 5권을 제작하였습니다.
    각 권마다 설교 50편씩 실었습니다.
    cd 2장도 있고요.
    인쇠비만 주시면 보내 드리겠습니다.
    대체로 성경 본문을 중심으로 설교하려고 했는데
    참고가 되면 열락 주세요

    010-8875-0191


  • 2015-03-26 19:48

    내가 부질없는 일을 했나아다.


  • 2015-03-26 21:10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어느 목사님이 주일 유,초등부 예배에서 아이들에게
    * 얘들아 여리고성을 누가 무너 뜨렸냐?.물으니
    * 한 아이가 ' 제가 안 무너 뜨렸는데요 ! 했다지요
    * 목사님이 교사에게 아이들을 어땋게 가르쳤시에 .. 책망을 하니
    * 교사의 대답은 ( " ㅡ ㅡ ㅡ ㅡ ㅡㅡ : " ) 아시는 분 정답 주세요
    ( 혹시 "저도 아닌데요? "일까요? 웃음 글) Shalom !!!


  • 2015-03-26 21:48

    혹시 "제가 안 가르쳐 줬는데요?"라고 했을까요? 아니면
    "맞아요. 저 아이가 무너트리지 않은 건 확실합니다."일까요? ㅎㅎ


  • 2015-03-26 23:09

    여보~ 나 모했나?


  • 2015-03-26 23:20

    빌라도의 법정에서 재판장 빌라도는 예수를 심문하고
    첫번 째: "나는 그에게서 아무 좌도 찾지 못했노라" (요18:38)
    두번 째: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에게 알게 하려 함이로다 ( 요 19: 4)
    세번 째: "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첮지 못했노라:(요 19:6)
    @ 세번씩이나 죄가 없으시다 선언하면서도, 대제사장들과 아랫 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지르며
    ㅡ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 소리에 굴복하여...
    @ 민란이 나는 것을 두려워하며 물로 손을 씻으며 무관함을 나타내고
    @ 빌라도가 행한 일: "예수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ㅡ 사도신경(신앙고백)을 통하여 지난 2천년+앞으로 주님 오실 때까지 빌라도를 규탄하고 있음에
    @ "네가 무엇을 하였는냐?" 는 인간의 실존적안 질문 인가 합니다. Shalom. !!!


  • 2015-03-27 07:50

    네, 제가 '해석하지 않음'을 했나이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공지사항 관리자 2014.10.22 66371
공지사항 관리자 2010.12.29 64487
13806 박연훈 2024.04.15 42
13805 김병태 2024.04.15 141
13804 함창석 2024.04.15 31
13803 송신일 2024.04.14 110
13802 최세창 2024.04.13 63
13801 홍일기 2024.04.12 124
13800 홍일기 2024.04.12 122
13799 함창석 2024.04.10 83
13798 미주자치연회 2024.04.09 247
13797 홍일기 2024.04.08 121
13796 원형수 2024.04.08 137
13795 이승현 2024.04.08 182
13794 함창석 2024.04.08 69
13793 홍일기 2024.04.07 131
13792 송신일 2024.04.06 135
13791 홍일기 2024.04.05 134
13790 선교국 2024.04.02 350
13789 함창석 2024.04.02 97
13788 홍일기 2024.04.01 143
13787 선교국 2024.04.01 3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