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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은 살았으나 내용은 죽은 자들의 교회

작성자
원학수
작성일
2015-03-02 21:25
조회
1435
살았으나 죽은 자들의 교회
요한계시록 3:1-6.


생명이 있으면 아무리 작은 씨앗이라도 돌을 들추고 싹이 자랍니다.
생명이 있는 것들은 아무리 작은 생물들일지라도 끊임없이 활동합니다.
그러나 생명이 없으면 아무리 크고 아름다움을 가졌다 할지라도 차츰 썩어져가고 있을 뿐입니다.
세상에 그런 것들을 두고, “살아 있는 강아지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고 말합니다.
살아있는 것은 아름답고 활기가 있습니다.

교회도 살아있는 교회는 생동감이 넘치고 활기가 있는 교회입니다.
영적능력으로 충전된 교회,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축복받는 교회, 성도들이 날마다 모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생활을 하는 교회, 믿음의 비밀과 값진 영적경험을 가지고 봉사의 즐거움과 충성의 보람이 언제나 성도들의 생활에서 열매로 나타나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축복으로 넘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와 반면에 무기력하고 나약한 것은 죽은 교회입니다.
교회건물이 웅장하고 아름답다고 해도 아무소용이 없습니다.
모든 면에 마땅히 해야 할 봉사를 다하고, 모든 의식을 잘 지켰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세상을 향한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는 사명을 잃어버린 불 꺼진 교회, 생명이 없는 죽은 교회라면, 하나님의 코에 악취를 풍기는 교회로밖에 취급을 받게 되지못할 것입니다.

바로 그런 교회가 사데 교회입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되기 약 700년 전에는, 사데가 세계에서 제일 큰 도시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고도 450m의 난공불락의 자연요새를 이룬 자세를 자랑할 만한 지형을 이루고 있어서 적침에는 안전했다고 합니다.
산 밑에는, 팩톨러스 강이 흘렀는데, 옛날에는 황금 수가 흘렀다는 전설적으로 부유한 곳입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 강에는 금싸라기가 들어있어서 사데의 부요를 대부분 여기서 건져내었다고 합니다.
이런 부요 속에 사는 사데 사람들은 극도로 사치하며 음란하여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타락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BC 546년에 페르시아의 키루스에게 정복을 당하고 다음에는 BC 330년에 알렉산더 대왕에게 정복을 당하였습니다.
그리고 AD 17년에 지진으로 파괴되고 후에 티베리우스 로마 황제가 다시 도시를 증축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데는 수 년 동안 로마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사데는 그래도 그때까지에는 비교적 중요한 도시였으나 옛날 같지는 않았습니다.
이솝이 그의 유명한 이야기들을 쓴 곳이 바로 이 사데입니다.
사데는 또한 시베레 여신에게 대한 우상숭배로 널리 알려진 곳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도시환경에서 신앙의 바른생활을 하지 못하고 세상과 타협했으므로 주님께로부터 “살아있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라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사데 교회에 나타난 주님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① 하나님의 일곱 영을 가지신 이로 오셨고,
② 일곱별을 가지신이로 오셨습니다.

① 하나님의 일곱 영을 가지신이로 오셨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변화무쌍한 능력과 운동력 안에서, 성령을 소유하고 계심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일곱이란 완전수로서 성령 안에서 완전성을 의미합니다.
부요하신 성령을 말하는 것입니다.
말라기 2:15, “하나님의 성령은 유여하시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유여하심으로, 모든 사람의 성령이 되실 수 있고, 또 모든 사람을 만족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어머니가 여러 자녀들에게 만족한 어머니가 되고, 한강물이 수백만의 서울 시민들에게 만족할 만큼 물을 공급하는 식수원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유여한 성령을 가지신 주님이십니다.
그 말은 그리스도께서 성령님의 일을 주관하신다는 뜻입니다(계 14:16).
성자 예수님은 성령을 받으실 뿐만 아니라, 성령님을 소유하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자 예수님은, 성령을 나눠주시는 분이십니다.
이사야 11:1-3,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살아있는 교회는, 성령님을 충만하게 부어주시지만, 죽은 교회에 대해서는, 보혜사의 자격으로서가 아니라 심판자의 자격으로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② 예수님께서 일곱별을 가지셨다는 말씀은, 일곱별은 일곱 교회와 일곱 교회의 사자들을 의미하였습니다(계 1:20).
일곱 교회의 목사들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저들을 보호하시고 숨겨주시기 위해서 오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맡겨주신 일들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 것인가를 설명하기위해서 저들을 손에 쥐고 계시는 것입니다.

별은 초연하게 세상에서 떨어져있고, 어두운 밤을 밝히며 때와 방향을 지시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들은 영적으로 이 별과 같은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이 일곱별을 붙잡듯이,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자들을 붙잡으시고, 그들을 통하여 일하시는 것입니다.
모세를 붙잡고, 애급에서 포로 생활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셨고, 요셉을 붙잡고, 이스라엘과 그의 11한 형제를 흉년에서 구하셨으며, 바울을 붙잡고, 아시아와 마케도니아에 복음을 증거 하셨으며, 여러 선지자들을 붙잡고, 역사하신 것처럼, 지금도 그의 종들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시며 교회를 먹이시는 것입니다.

사데 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은, 그의 부요하신 성령과 그의 사자들을 붙잡으신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메마른 사데 교회를 다시 부흥케 하시려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 속하여있습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완전하게 소유하신 분이십니다.
흔히 사람들은 교회가 그들에게 속한 것같이, 그리고 자기들 자신과 자신들의 목적에 적합하게 봉사하고 다스릴 권한이 있는 것같이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와 그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그러나 혹은, 교회 어느 부분에 관한 결정에 있어서 결단의 요소는, 어떤 사람의 생각대로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주요 소유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하라고 하시느냐? 하는 것이어야만 합니다.
사데 교회에 대한 혹심한 평은, 그 교회가 비록 살았다고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영적으로 죽어있다는 것입니다.
이 책망은 아시아 일곱 교회에 대한 책망 중에 가장심한 책망입니다.
살았다고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상태이상 비참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한 가정안에서도 사람이 살아 있을 때에야 사랑하는 남편이요, 사랑하는 아내요, 부모와 자식이지, 난리 통에 죽어버린 시체가 되니까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서, 길가에 죽은 시체대로 뒹굴게 내버려 두고 달아나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사데 교회는 산 교회라는 이름이 난 교회였습니다.
지역사회에서 살아있고, 빈틈이 없으며,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는 평판을 얻었습니다.
그 평판은 사데 지방뿐 아니라, 이웃교회나 동포교회들까지에도 이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이 땅에서 얻는 평판이, 하나님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예배당을 크게 짓고, 아름답게 꾸미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법석을 떨어도, 속 중심이 살아있지 못하고 성령에 생명수가 메말라가고, 빛의 사명과 직분을 발휘하지 못할 때, 그것은 살아있는 교회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삼손이 머리를 삭발당한 뒤에 그에게는 힘이 상실되고, 주님의 능력도 그에게서 사라졌으나,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나아가서 그전과 같이 똑같은 큰일을 감당하려 했으나, 삼손은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이런 모습들이 사데 교회의 형편이었던 것입니다.
저들은 스스로의 힘을 발휘하여 거대한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이미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에게서 사라지고 없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과거의 찬란한 역사와 영광을 자랑하고 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지나간 날들의 업적을 회상 할지라 해도 소용이 없는 일들입니다.
행복했던 날들과 봉사와 충성의 기억들이, 추억으로만 남아있을 뿐입니다.
이제는 교회출석도, 예배드리는 시간도, 마치 허드렛일을 처리하듯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기쁨과 평안, 그리고 찬양이 다 타버린 재와 같이 남겨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부곡 온천에 하와이 한국관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온갖 맹수들과 짐승들과 새들과 곤충들이 각각 포즈를 취하고 유리관 속에 있었습니다.
무섭게 입을 벌려고 날카로운 이빨을 내어 놓고 포효하고 있으며 팔을 높이 지켜든 모습들은, 금방이라도 덤벼들듯이 보입니다.
날카로운 이빨과 번쩍이는 눈동자, 상대방을 덮치려는 듯이 높이 치켜들고 있는 팔은 윤기 나는 털가죽으로 싸여있지만, 그러나 그 짐승들은 모두가 죽어있는 박제들일 뿐입니다.
어느 구석하나 생명의 흔적은 찾아볼 수도 없는 것들입니다.
죽은 짐승들과 새들의 박제들일 뿐입니다.
어느 꽃가게에서 많은 꽃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모두가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조화였습니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것 같았으나 생명이 없는 꽃들이었습니다.
아무리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으나 생명이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면 살았는지 죽었는지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첫째로, 살아 있으면 감각을 느낍니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감각이 있어서 즉시 반응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죽어있는 것은 아무런 반응도 감각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신앙상태도 살아있는 신앙은 분명히 감각이 나타납니다.

이사야 6: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죽은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목도하면서도 깨닫지를 못합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여름의 무더위 철에 덥다고 헉헉거리지만, 죽은 사람은 화장터에서 기름불에 몸을 태워도 움직이거나 돌아눕지도 않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겨울철에 춥다고 하지만, 죽은 사람은 얼음 창고에 냉동시켜도 춥다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작은 가시만 찔려도 아프다고 하는데, 죽은 사람은 몸을 쪼개고 잘라도 아프다는 말이 없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한 끼만 굶어도 배고프다고 하는데, 죽은 사람은 땅 속에 파묻어두고 몇 달이고 몇 년이고 흙으로 덮어두어도 불평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심령이 살아있는 사람은, 사소한 잘못만 저질러도, 하나님 앞에서 괴로워하고 마음이 아파하지만, 심령이 살아있지 못하는 사람은 도무지 아무런 감각이 없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이 살아있는 신앙이 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어떤 말씀을 받든지 믿음 안에서 순종하고 충성하고 민감해져서, 주님 앞에 살아있는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감각이 없고 마음이 마비가 되어있으면, 무슨 말을 들어도 무서운 줄을 모르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매를 맞고 징계를 당해도 회개할 줄 모르니, 죽은 징조요 죽은 신앙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밖에는 받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둘째로, 살아 있으면 호흡을 합니다.
생명의 호흡은 살아있는 것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호흡을 계속하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이지만, 호흡을 끝이는 것은 죽어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병원에서도 죽어가는 환자에게 호흡을 계속하게 하려고, 산소통을 코에 대고 인공호흡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혼의 호흡은 무엇입니까?
영혼의 호흡은 기도입니다.
기도가 그치는 것은, 영혼이 병든 증거입니다.
육체가 죽으려고 하면, 시간을 연장시키려고, 수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애쓰고 노력합니다.
산소통을 코에 대고 살려보려고 하면서도, 영혼의 호흡인 기도가 막혀서 질식 상태에 이르게 된 사람들은 살리려고 산소통을 코에 대고 호흡시키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성도들은 죽어가는 영혼들을 다시 호흡하도록 살려내시기를 바랍니다.
죽어가는 영혼들을 다시 살리고 호흡을 지속하게 합시다.
기도해야겠다고 하면서도, 기도하지 못하고, 기도하지 못하여 안타까워하면서 애쓰는 분들이 계십니까?
이 시간 성령에 산소통을 코에 대시고, 영적으로 호흡하며 기도함으로 은혜 안에 살 수 있도록 힘쓰시기 바랍니다.

죽은 시체에게는 아무리 좋은 옷을 입혀도 호흡하지를 못합니다.
살아있어야 호흡을 하고, 호흡하는 사람이라야 살아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간구의 영이 되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도와주시는 영혼의 산소통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기도의 불이 다시일어나 하나님께 부르짖고 간구하여 응답을 받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셋째로, 살아 있으면 체온이 뜨겁습니다.
우리 인간의 체온은 대개 36-37도가 정상입니다.
이 온도보다 낮아도 문제이고, 이 온도보다 높은 온도도 문제입니다.
살아있으면 몸이 따뜻합니다.
손을 만져도 따뜻하고 살을 만져도 따뜻합니다.
그러나 죽은 사람은 뱀을 만지듯이 살이 차갑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의 믿음의 체온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뜨거운 신자들을 원하십니다.
믿음이 뜨거워지기를 원하십니다.
사랑이 뜨거워지기를 원하십니다.
기도가 뜨거워지기를 원하십니다.
찬송이 뜨거워지기를 원하십니다.
모이기가 뜨겁고, 봉사가 뜨겁고, 설교가 뜨겁고, 감사가 뜨겁기를 원하십니다.
뜨거운 사람은 무엇을 받아먹든지 잘 받아먹고 소화도 잘합니다.
그러나 소화불량에 걸렸거나 병든 사람은 무엇이든지 받아먹지를 못하고, 무엇을 받아먹어도 제대로 소화하지도 못합니다.
무슨 말씀이든지 아멘으로 받아먹고 소화를 잘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누구에게나 따뜻함을 느끼게 합니다.
어떤 교회는 안으로 들어가 보면 차갑게 느껴지는 교회가 있습니다.
찬바람이 쌩-하게 느껴지는 교회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런 사람들까지도, 그리스도의 따뜻한 체온으로 녹여 주는 성도들이 되십시다.
뜨거운 성도들은 모이면 기도하고, 신앙의 체험을 함께 나누며 은혜를 받습니다.
성경을 열심히 읽고, 서로 권면하고, 사랑을 나눕니다.
그러나 병든 성도들은 오락에 치우치고 믿음이 식어집니다.
뜨거운 성도들은 세상 적이고 속된 것에는 치우치지 아니하고, 신령한 영적인일에 열심을 다합니다.
의무감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뜨겁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넷째로, 살아있는 사람은 활동합니다.
생명이 있는 것은 언제나 움직이고 있습니다.
심지어 나무나 풀들도, 우리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속도로 움직이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죽어있는 것들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놓여있는 그대로, 옮겨진 그대로, 언제나 있습니다.
엎어놓으면 엎어놓은 대로, 세우면 세워놓은 대로입니다.
진보도, 발전도, 성장도, 전진도, 없습니다.

사데 교회가 살아있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라는 말씀은 어떤 외관적인 관찰에서가 아니라, 그들의 이면생활을 보시고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 같으면서도, 바른 신앙의 생활이 아닌 것을 책망하시는 것이며, 교회생활을 잘하는 것 같으면서도, 세상의 부정을 모두 행하는 신자들을 보시고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신앙은 어떻습니까?
활동합니다.
번성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힘차게, 그리고 열심히 전진하고 성장합니다.

밭에는 끈질기게 자라는 잡초들이 있습니다.
뽑아도 뽑아도 다시 나고 죽지를 않습니다.
잠깐 후면 번성하게 자라서 곡식보다 더 자랍니다.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성장 열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 말씀처럼 복음을 전파합시다.
그렇다고 하면 나는 지금 살아있는 믿음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는 살아있는 신앙입니까?
죽어있는 신앙입니까?
살아있는 신앙을 가지신 성도 여러분!
충성하고, 봉사하고, 전도하고, 선교하여, 상급 받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살아있는 믿음의 생활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전체 3

  • 2015-03-04 18:52

    나도 댓글하나 단거 같은데 없네.
    어쩌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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